1997년, 2002년, 2011년 승리공식은 '단일화'

1997년, 2002년, 2011년 승리공식은 '단일화'

김익태 기자
2012.10.29 16:53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대선에서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36.6%의 낮은 득표로 승리했다.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28%)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27%)가 독자 출마해 야권 표가 분산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대선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Again1987년'이 재현될 공산이 크다는데 이견이 없다. 'Again 2002'를 열망하고 있는 야권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2002년에는 대선 20여 일을 앞둔 11월 14일 노무현 새천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구도는 대세론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1강, 노-정 후보의 2중으로 재편되는 시점이었다. 반(反) 이회창 공동전선을 구축, 낡은 정치의 틀을 깨보자는데 양자 간 합의가 이뤄진 일종의 '인물연대'였다.

후보 단일화는 TV토론과 여론조사를 통해 이뤄졌고, 집권 이후 권력분점의 조건은 없었다. 당시 국민경선과 협상 담판, 여론조사 등의 단일화 방식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협상담판은 정 후보가, 국민 여론 50%, 당원 참여 50%의 국민 경선안은 노 후보가 제안했다. 협상은 난항을 겪다 노 후보가 정 후보에게 다소 유리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전격 제의해 합의가 이뤄졌다.

2곳의 여론 조사 중 리서치 앤드 리서치 경쟁력 조사에서 노 후보는 46.8%를 얻어 42.2%를 얻은 정 후보를 제쳤다. 월드 리서치 조사에서도 노 후보는 38.8%로 정 후보(37%)를 앞섰지만, 이 후보 지지율이 28.7%로 조사 유효화 조건인 31.1%에 미치지 못해 무효 처리됐다. 대선 전날 정 후보가 단일화를 파기했지만, 노 후보는 이 후보를 57만 표 차로 이겼다.

1997년 대선에선 투표 40여 일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이른바 'DJP 연합'이라는 '지역연대'를 했다. 내각제 개헌이라는 '깜짝 공약'을 내놓은 이들은,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을, 김종필 총재는 국무총리를 맡기로 하는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김대중 후보는 이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눌렀고, 집권 초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등 권력도 분점 했다. 하지만 내각제 개헌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지금껏 대선에서 두 차례 단일화는 모두 정당과 정당 간 합의였지, 정당과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지지율 50%를 넘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대에 불과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를 양보했다.

단번에 '시민후보'로 부상한 박 후보는 박영선 민주통합당 후보와 △일반 시민이 현장에서 투표를 하는 국민참여경선 40% △서울시민 상대 여론조사 30% △TV토론 후 배심원단을 상대로 하는 적합도 조사 30%를 반영하는 단일화 조건에 합의했다. 최종 합산 결과 52.15%를 얻은 박 후보는 45.57%에 그친 박영선 후보를 누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됐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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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태 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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