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3일 박근혜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이 나흘 만에 수정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서민·중산층 세 부담이 늘어난데 대해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이 12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7개월간 공들여 만든 내용이 불과 며칠 만에 바뀌었다. 경제수장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지 불과 8시간 만에 "정무적인 판단이 부족했다"고 사과했다.
얼떨떨한 건 국민 뿐 아니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안이 나오기까지 정부와 계속해서 협의를 해왔던 정책위 관계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현 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나라 살림을 결정하는 조세정책이 순식간에 바뀌는 걸 보면 '웃지 못할 코미디'라 할 수도 있겠다.
이번 일로 박근혜 정부는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우선 조세 정책에 대한 신뢰도다. 특히 세제 개편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받고 방향을 정한 것은 다름 아닌,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라고 봐야 한다. '신뢰'와 '원칙'을 신조로 삼았던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청 협의 구조에 대한 의문도 해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 활동이 시작된 지난 1월부터 약 7개월간 세제개편안을 논의해왔다. 이 과정에서 당정은 수차례 논의를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당은 비판자의 입장에서 담당 부처를 질책하고 수정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잘된 정책은 청와대와 당의 몫이고, 잘못된 정책은 담당부처 몫이라는 말 밖에 안 된다. 이런 식이라면 협의의 한쪽 주체인 정부가 당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또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까.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민심에 누구보다 가까워야 될 여당이 당정 협의 과정에서 봉급생활자로부터 쏟아질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세제개편안 수정으로 인한 혼란은 결코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조세 정책 방향, 정책 홍보 역량, 민심 파악, 당정청 논의 구조까지 총제적인 점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