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어떤 도시?

G20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어떤 도시?

박광범 기자
2013.09.04 12:00

[ G20 정상회의] '유럽으로 열린 창'…도시전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제 8회 G20 정상회의가 오는 5일부터 이틀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다. G20 정상회의에는 지구촌을 대표하는 별들이 총결집하는 만큼 회의가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제 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UNESCO)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문화와 예술, 역사와 유적의 도시다. 시내에는 약 250개의 박물관과 50개의 극장, 80개의 미술관이 있으며 해마다 900여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사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화려한 유럽식 근대도시로 변모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자그마한 어촌에 불과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피터) 대제'의 정치적 야욕의 소산이기도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 이름에서도 표트르 대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상트(saint)'는 영어로 '성스러운'이란 뜻이고, '페테르'는 영어로는 '피터 대제', 러시아어로는 '표트르 대제'를 의미한다. 마지막 '부르크'는 독일어나 네덜란드어에서 '도시'란 뜻이다. 즉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성스러운 표트르(피터) 대제의 도시'란 뜻으로 표트르 대제의 계획 하에 설치된 계획도시다.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 북방전쟁을 치르면서 유럽을 향한 전초기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 기지로서 네바강 하류와 발트해가 만나는 늪지 위에 인공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삼은 도시 건설에 착수한다. 이 도시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다.

표트르 대제는 1712년 제국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긴다. 이후 1918년 소비에트 정부의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기면서 이곳 이름은 '페트로그라드'로 바뀌고, 1924년 레닌 사망 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레닌그라드'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러시아 연방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원명으로 복원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또 다른 설도 있다. '페테르'가 '돌'을 뜻하기도 해, 즉 '성스러운 돌의 도시'라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돌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도시의 틀을 잡고 난 이후 300여 차례에 걸쳐 범람이 연이어 발생하자 석축을 쌓아야 했다. 그러려면 많은 돈이 필요 했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보다 큰 돌덩이 두 개씩을 통과세란 명목으로 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 인구 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850㎞ 떨어져 있다. 특히 40여 개의 섬을 연결해 '북부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름이면 백야를 즐길 수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과 도스토예프스키, 음악가 차이콥스키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주 무대이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원래 늪지대였기 때문에 여름을 제외하곤 안개가 잦고 습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여름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푸시킨은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 칭송했던 반면, 겨울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도스토예프스키는 "고전과 퇴폐, 찬란한 아름다움과 우울함이 동시에 피고 지는 세속적인 도시"라고 평하기도 했다.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건축물도 넘쳐난다. 40년에 걸쳐 건립된 '상트 이삭 대성당'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여름궁전', 알렉산드르 2세가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둔 '피의 사원', '그리스도 부활 성당'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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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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