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4·29 재보선까지 '연전연패' 새정치연합, 그리고 영국 노동당

선거마다 줄줄이 졌다. 이겨본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정책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유권자들은 '수권능력'을 의심했다. 특정계파가 득세했고, 이에 반발한 일부 세력이 탈당해 그나마 있던 표마저 깎아먹었다.
국가부채와 안보에 둔감한 태도는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보수정권 심판론'에만 매달린 결과는 참담했다. 승리의 DNA는 잃은지 오래고, 패배의 DNA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얼핏 보면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1980∼1990년대 영국 노동당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현재 새정치연합의 상황에 묘하게 꼭 들어맞는다.
새정치연합은 민주당 시절이던 2011년 4월 재·보궐선거 승리 이후 4년 동안 총선, 대선, 재보선 등 모든 선거에서 패했다. 최근 치러진 4·29 재보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 노동당은 이보다 더했다. 19년 동안 줄곧 선거에서 졌다. 1978년부터 1997년까지 마가렛 대처 등이 이끄는 보수당에 번번히 밀렸다. 1978년 정권을 놓친 직후 노동당은 더욱 좌경화됐다. '선명성'이 부족해 선거에서 졌다는 판단에서였다. 강성 좌파가 당권을 잡았고, 이에 반발한 온건파들이 대거 탈당해 사회민주당을 만들었다. 중도개혁 신당에 밀려 노동당의 이념적 좌표는 점점 더 왼쪽으로 갔다.
1983년 선거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표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이때부터 노동당은 중도노선으로 옮겨가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정권을 빼앗긴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중도로의 노선 수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의 최대 지분을 가진 노조의 입김 때문이었다.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투표권의 40%가 노조의 몫이었다. 노조와 등을 지고는 노동당의 당수가 될 수도, 당수의 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당시 국민들은 '강성 노조'에 환멸을 느끼고, 노조의 꼭두각시인 노동당에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조의 뜻에 반하는 당 개혁은 처음부터 불가능해보였다. 노동당의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수상이다. 1994년 당수로 선출된 블레어는 재집권을 위해서는 노조와 거리를 두고 중도 노선으로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당내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고 당의 정책기조를 중도로 돌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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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취한 대표적인 조치가 당 강령에서 노동당의 사회주의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생산수단의 공유화' 조항을 삭제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노조 지도자와 당원을 비롯해 4만명 이상을 직접 만났다. 설득 작업에 꼬박 1년이 걸렸다. 보수당의 노조 탄압에 지쳐 노동당의 재집권이 절박해진 노조 지도부는 블레어의 개혁 조치를 따라줬다.
노동당 개혁을 위한 블레어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국민들은 그가 이끄는 노동당을 '새로운 노동당'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노동당은 19년 만에 비로소 선거에 승리하며 집권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노동당은 재집권을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알았지만 이를 실행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주류 세력의 저항을 뚫고 익숙한 기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는 건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새정치연합도 선거 승리와 재집권을 위해 필요한 게 뭔지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이를 실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영국 노동당이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블레어의 끈질긴 개혁 노력 외에도 끝없는 선거 패배와 혹독한 야당 생활에 지친 노조와 당원들의 절박함이 있었다.
새정치연합이 혁신을 통해 승리 DNA를 되착고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답은 단 한가지 물음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선거에 지는 게 진정으로 몸서리 치게 싫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