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미국 상·하원 선거가 중간선거가 될 수 있는 이유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지켜보고 "'심판론'을 심판하라…지극히 상식적인(?) 박근혜 마케팅"(☞기사 바로가기)이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예상보다 공감을 표하는 반응이 많아서 오히려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기사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다른 선거가 더 이상 정권심판의 유효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제기였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야당 국회의원을 선택한들 대통령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야당 국회의원을 더 뽑아서 정권을 심판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심판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였다. 이번 4·29 재보선까지 3차례의 선거에서 야당이 내세운 정권을 심판할 이유는 매번 달라졌지만 그때마다 '정권심판론'의 내용은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에선 상하원 선거가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성격의 '중간선거'로 치러진다. 왜 그럴까?
미국은 2년마다 상원의원 3분의 1과 하원 전체를 선출한다. 4년마다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와 겹치지 않는 선거를 중간선거라 부른다. 법안에 대한 의회 주도권을 결정해 대통령과 집권당의 정책 방향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이 같은 정책 주도권을 상당 부분 상실하기 때문에 '레임덕'으로 간주된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책심판'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부터 미국 상하원 의석수를 살펴보면 클린턴 1기 행정부와 부시 2기 행정부, 그리고 지난해 11월 치러진 오바마 1,2기 행정부 중간선거에서 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
나름대로 정권심판이 이뤄진 셈인데 중간선거가 보여준 결과는 뚜렷하다. 각 행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 중간선거의 주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선거 후에는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일정 부분의 정책 수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1994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는 클린턴 1기 행정부의 강한 진보성향 정책에 철퇴가 내려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제기된 정책이슈들에 대해 공화당의 문제제기를 신속히 수용했다. 공화당에게 승리를 안겨준 국민적 불만을 완화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연히 정책 노선은 소신과는 멀어졌지만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중도 쪽으로 이동하게 됐다.
2006년 중간선거는 이라크전 처리와 경제 정책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지나친 보수화를 저지하는 계기가 됐다. 부시 정부가 가장 주요하게 내세웠던 감세정책이 결정타였다. 미국 중산층은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을 부유층에 대한 특혜로 보고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 이는 부시 정부 하에서 소득양극화가 악화됐다며 중산층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독자들의 PICK!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경기부양책에 따른 재정지출 문제와 중동정책 등으로 공격당하며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공화당에 내줬다. 레임덕이 기정사실화됐다는 평가에 부자증세라는 승부수를 던지고 경제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중간선거가 이처럼 정권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거는 '심판'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아젠다를 제시하고 대안을 내놓기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도 선거를 통해 정부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심판론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법이다.
4·29 재보선의 결과는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느냐,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했느냐에서 갈렸다.
새누리당은 지역예산 공약으로 표심을 파고들었다. 서울 관악을에서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을 만들겠다며 후보의 이름을 딴 '오신환법'을 공약하기도 했다. 예산과 입법이란 국회의 역할을 내세운 전략이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정권심판론'에 매달렸다. 대선에서나 어울릴 전략이었다. 재보선으로 야당 국회의원이 4명 늘어난다고 대통령을 바꾸거나 장관을 갈아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선 초반 "국민지갑을 지키겠다"고 했던 구호가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