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의 폴리티션!]'미테랑이 시라크를 다루듯'

[김태은의 폴리티션!]'미테랑이 시라크를 다루듯'

김태은 기자
2015.06.01 06:02

[the300]당청 갈등 심화 속 정부와 의회 권력의 공존 모색은 요원

29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과 관련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2015.5.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9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과 관련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2015.5.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정부, 특히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의 관계를 고민할 때 '미테랑 모델'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이른바 '미테랑이 시라크 다루듯하라'는 교훈이다. 프랑스 이원집정부제에서 나타난 '동거정부'의 특수성을 넘어 권력의 공존 방식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 내각제 요소를 결합해 대통령과 총리가 통치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분권형 개헌의 대표적 모델로 언급되는 형태다.

프랑스 이원집정부제의 가장 큰 특징은 의회를 수반하는 총리를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대통령이 총리를 통해 의회를 거느리는 형태다.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에 따라 권력의 집중도와 견제 양상이 달라진다.

대통령과 같은 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대통령이 그야말로 '제왕적 권한'을 발휘할 수 있다. 국회에서 집권당이 국정을 떠받치는 우리나라 대통령제와 비슷하다.

동거정부는 의회 다수당이 대통령과 대립적인 관계일 때 나타난다.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총리를 임명해 국정 운영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의회가 이를 동의하지 않을 경우 내각 총사퇴로 이어져 정국이 불안정해진다.

1986년 좌파인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은 우파 연합이 의회 다수당이 되자 자크 시라크 총리를 임명한 뒤 그에 그치지 않고 국정 통할권의 상당 부분을 내어주는 결단을 내리면서 동거정부를 출범시켰다. 미테랑은 외무부와 국방부를 제외하고는 반대파인 시라크가 국내 주요 정책을 이끌도록 국정 개입을 최소화했다. 대통령은 외교·국방의 외치를, 총리는 내치를 나눠맡는 이원집정부제의 특징이 이 때부터 비롯됐다.

'미테랑 모델'은 프랑스 동거정부의 전범이 됐다. 1993~1995년 좌파 미테랑과 우파 발라뒤르 총리, 1997~2002년 우파 시라크와 좌파 조스팽 총리의 동거정부도 대체적으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과 내각이 균형과 조정을 잘 이뤄 오히려 능률적인 국정 운영이 이뤄졌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여서 정부와 의회가 비교적 엄격하게 분리돼 있는 대통령제 국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공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미테랑 모델'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테랑이 동거정부 동안 당파를 초월한 중립적 입장을 취해 의회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 점을 본받아 국회 다수당에 국정을 맡기겠다고 야당 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현실적 한계도 있었지만 대통령과 의회 권력 간 대립이 초래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은 미테랑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실제 미테랑은 다음 대선에서 동거정부의 '실세 총리'였던 시라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총선에서도 좌파가 안정의석을 확보해 단독 내각을 구성, 다시 강력한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에 복귀한 셈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를 초월한 듯한 무(無)당파적 태도를 취하며 입법부와 행정부 간 대립구도를 의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미테랑 모델'을 떠올렸다. 권력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가 그야말로 180도 다른 대척점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국회가 법률의 취지에 어긋난 시행령을 수정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행정마비가 우려된다느니,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느니, 국회를 강력 비판하면서 여당 지도부마저 무릎 꿇리려 하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엿보인다.

박 대통령은 동거정부 당시 미테랑과 달리 국회 300석 중 160석에 달하는 집권여당을 거느리고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단단한 '콘크리트 지지율'을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권한을 조금이라도 내주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의회와 일전을 벌이는 모습은 미테랑이 대통령과 의회 간의 대립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 내려놓은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집권여당이 압승을 거둔 결과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새누리당 한 중진 국회의원의 말이 귀에 남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