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체 없이'가 필요한 국회

[기자수첩]'지체 없이'가 필요한 국회

지영호 기자
2015.06.01 06:02

[the300]

지난달 29일 국회는 박근혜정부 최대 난제였던 공무연원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막판 쟁점이 된 부분은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으로 촉발된 시행령 수정 권한을 국회에 주는 내용을 두고 위헌논란이 발생했다. 자칫 판이 깨질 듯한 급박한 위기 속에서 여야가 내놓은 해법은 '지체 없이'였다.

국회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수정·변경을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없이 처리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여기서 '지체 없이'를 뺀 것이다.

어렵게 도출한 협상안의 법적 효력은 유지하면서, 행정부를 자극하지 말자는 게 이유였다. 협상 실패 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공무원연금개혁의 '출구'를 찾아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그만큼 절실했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관용적 표현이기 때문에 빼도 법적 효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지체는 더디다는 뜻의 '지(遲)'와 막히다는 뜻의 체(滯)가 합쳐져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지체는 '때를 늦추거나 질질 끎'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법 전문용어로 사용할 때는 '의무 이행을 정당한 이유없이 지연하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지체 없이'라는 말이 삭제됐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의무 이행을 정당한 이유없이 지연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 '지체 없이'가 시행령 문제에 있어 행정부와 입법부의 유권해석을 가를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가 국회법에서 삭제한 '지체 없이'라는 대목은 사실 그동안 국민이 국회에 요구해온 단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통과만 하더라도 논의시작 150일 이상이 지난 이날 새벽 1시까지도 협상 파기와 재협상, 추인 실패라는 얘기가 오르내리면서 본회의 처리 여부가 안갯속을 헤맸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쇠사슬이나 해머, 멱살잡이와 최루탄은 없어졌지만 여야가 협의한 일정은 번번이 연기되기 일쑤다. 연기 방식이나 이유도 가지가지여서 '창조 국회'라는 얘기도 나왔다.

국회가 앞으로 행정부와 '지체없이'를 두고 당당하게 맞서려면 스스로부터 '지체 없이' 할 일을 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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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 산업2부장

'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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