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천 전 대표, DJ 앞에서 담배 피운 '법안 제조기'

박상천 전 대표, DJ 앞에서 담배 피운 '법안 제조기'

최경민 기자
2015.08.04 16:05

[the300] 4일 사망한 박상천 전 대표는 누구?

4일 별세한 박상천 전 대표. 2015.8.4/뉴스1
4일 별세한 박상천 전 대표. 2015.8.4/뉴스1

4일 오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상천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의 별명은 '법안 제조기'였다. 5선 국회의원으로 당 대표까지 지낸 그는 의원 재임시절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법 등 굵직굵직한 입법을 주도했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서울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20년 동안 판·검사 생활을 했다. 1988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13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당 대변인을 거쳐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정부 초대 법무장관 등을 지냈다. DJ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소신도 굽히지 않아 '소신 9단'으로도 불렸다. 법무부장관 시절 DJ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에 대한 특별사면 지시를 내리자 "불법사면은 안 된다"며 세 번 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13~16대까지 내리 4선을 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사태가 일어나자 '정통모임'을 만들어 당 사수파 수장으로 나섰다가 분당이 이뤄지자 당 대표직을 승계했다.

하지만 2004년 개혁공천을 선언한 '추미애 선대위'에게 인적 쇄신 대상으로 낙인 찍혀 공천이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출마한 17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2007년 군소 정당이었던 민주당 당 대표에 뽑혔고 야권 통합의 한 축을 담당하며 18대 총선에서 5선을 달성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후배 정치인에게 길을 열어준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서울대 법대 동기생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절친 사이다. 박 전 의장이 주변에 "마누라만 빼고 우리는 똑같소"라고 박 전 대표를 소개할 정도로 각별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 여야를 대표하는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원내총무 시절인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역시 여당의 원내총무였던 박 전 의장과 담판을 벌여 이회창-김대중 후보 간 TV토론을 성사시켰다.

박 전 대표는 하루에 담배 3갑을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많게는 5갑을 피기도 했고 DJ 앞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회의를 하면 몇 번이고 담배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DJ가 실내 흡연을 특별히 허가해줬다는 것이다.

논리적이었지만 불같은 성격과 직선적인 어법으로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도 들었다. 다만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에서 보듯 성실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했고 자신만의 소신이 확실했다는 평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최경민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최경민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