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이라크 파병안 국회 본회의 통과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미사일 공습을 감행했다. 당시 미국이 내세운 침공 명분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무기(WMD)를 보유했다는 것.
한 해전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확산된 후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한국정부는 같은 해 12월 북한의 핵 동결 파기선언으로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서둘러 파병을 준비해다.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전 개전날인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소집, 건설공병대 600명과 의무부대 100명 이내의 병력을 현지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인 21일 국무회의에선 '국군부대의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이 의결돼 국회에 제출됐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곧바로 파병반대운동을 벌였고 파병 찬성의원들에 대해선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도 '반전·평화 의원 모임'을 결성해 조직적으로 파병반대에 나섰다.
여야는 같은 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파견동의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시민단체들과 반전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본회의 개의 자체가 무산된다. 파병 반대 분위기를 누르기 위해 정부와 찬성 의견을 낸 의원들이 설득에 나섰지만 반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은 13년 전 오늘(2003년 4월2일) 국회 국정연설을 통해 "명분을 앞세워 한미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보다 우호관계와 동맹의 도리를 존중,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파병 찬성을 호소했다.
이날 여야는 의원총회를 거쳐 파병동의안에 대해 국회 본회의 표결을 실시했고 결국 찬성 179표·반대 68표·기권 9표로 통과됐다. 정부는 본회의 통과 13일 뒤 공병·의료부대인 서희·제마부대를 파병했고 이듬해 9월 비전투병력 3600명으로 자이툰 부대를 창설해 이라크 아르빌에 배치한다.
특히 자이툰부대에는 현지 임무가 종료된 2008년 12월까지 연인원 1만9000여명이 파병됐다. 이는 베트남전 이후 최대 해외파병 규모다. 하지만 베트남전과 달리 비전투병력이 파병돼 현지 재건 지원사업 수행을 도맡았다.
독자들의 PICK!
현지에서 병원 및 기술교육센터를 운영하고 학교, 보건소 건설 등 다양한 재건사업을 전개하면서 현지에선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이라크전의 명분이 된 대량 살상무기 보유가 허위로 밝혀지고 파병 규모에 비해 전후 이라크 개발사업에서 얻어낸 것이 미비해 파병 효과가 한미관계 개선 말고는 없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