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국방위원장 '6·15 남북 공동선언' 발표


1994년 남·북한이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화해 분위기가 확산됐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이 회담 직전인 그 해 7월 8일 급사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은 무기한 연기됐다. 화해 분위기는 곧장 냉각된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정상회담을 위한 양국간 물밑접촉이 활발히 이뤄지더니, 북한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경제적 협력이 필요한 북한의 현실이 맞아떨어진 것.
결국 2000년 6월 13일, 김 대통령 일행이 탄 전용기가 평양 땅에 도착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예상을 깨고 이날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 대통령 일행을 직접 맞았고 두 손을 맞잡은 두 정상의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된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튿날인 14일 오후 김 대통령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2차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문은 △자주적인 남북통일 △통일방안 공통성 인정 △이산가족·장기수 해결 △각분야 교류 활성화 △당국간대화 조속 개최 등 5개항으로 구성됐다.
6·15 남북공동선언문으로 불리는 이 5개항은 16년 전 오늘(2000년 6월 15일) 오전 0시를 넘어 TV를 통해 두 정상이 조인하는 모습과 함께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공동선언문을 통해 남·북한이 '한반도 화해·협력의 시대'를 전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금강산 관광·북한의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예견됐지만 국제 정세의 급변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와 생애 전반에 대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발표 전 현대그룹에서 북한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003년 대북송금특검이 도입돼 수사가 진행됐다. 대북송금 특검법에 의한 특검팀 수사결과 "현대그룹이 북한에 송금한 돈의 액수는 총 5억달러며 이 중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자금 1억달러가 포함됐다"고 밝혀지면서 정상회담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했다.
정삼회담이 오래 지나지 않아 북한의 태도도 이전 모습으로 되찾는다. 북한은 2002년 제2연평해전 도발과 2003년 핵실험 강행 선언 등을 이어가며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다. 현재는 거의 모든 대화채널과 민간교류가 단절된 상황이다. 6·15 남북 공동행사마저도 2008년 이후 열리지 못하고 남북 분산개최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