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깎아 놓고 낙찰포기하면 '부정당제재'

공사비 깎아 놓고 낙찰포기하면 '부정당제재'

지영호 기자
2016.07.20 05:33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the300][런치리포트-20대국회, 이법만은④]건설시장 불공정관행 개선(3)

포항역 전경 자료사진.(기사와 관계없음)/머니투데이DB
포항역 전경 자료사진.(기사와 관계없음)/머니투데이DB

정부 및 공공기관이 건설사업을 발주한 뒤 공사비(예정가격)를 임의로 삭감하고 있어 중소건설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들은 공공기관이 제시한 설계금액대로 공사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포기할 경우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손해를 감수하는 처지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부당한 사유로 공사비를 삭감하는 사례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모슬포 경찰서 출장소 신축공사의 경우 공사비 38%가, 군수사령부의 진해 신흥동 교회 신축공사는 21%가 삭감됐다. 고흥·군산에 인공어초를 놓는 시설공사에선 10%가량 공사비가 줄었다. 대부분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낙찰자인 중소건설기업에 책임지도록 했다. 해당 중소건설기업은 발주처가 공개한 설계금액을 기초로 입찰에 들어갔는데, 일부 금액이 누락되거나 삭감되면서 손실을 떠안은 것이다.

예컨대 100원짜리 제품을 써야 안정성이 유지됨에도 설계금액을 70원으로 계상하는 식이다. 만약 낙찰을 포기하면 입찰보증금이 몰수되고 부정당업자로 지정된다. 낙찰자는 사고위험을 감수하고 70원 제품을 사용하거나 30원의 손해를 입고서라도 안전한 시설물을 만들어야 하는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공공공사 입찰을 포기할 수도 없다. 건설업이 대표적 자전거형 산업(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듯 수주가 끊기면 폐업하는 업종)이다보니 손실을 보더라도 일감을 떼와야 한다.

대형사가 아닌이상 공사비 내역을 꼼꼼히 따져가며 입찰하기도 여의치 않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바닥난 수주물량과 공사내역서를 추후 작성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중소건설기업이 공사비를 사전 평가하는 전문인력을 따로 두는 것은 '배보다 큰 배꼽'이 될 수 있다.

이러다보니 향후 시설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해를 감수하지 않은 낙찰자가 70원짜리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다.

이 같은 문제는 박근혜정부가 공공기관의 예산절감을 강조하면서 가속화됐다. 부채 감축을 위해 공공기관은 '자린고비식' 공사비를 책정했고, 그 여파가 낙찰기업에게 돌아가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건설업계는 공사비 이의신청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삭감된 가격에 대해 입찰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계약심의위원회에서 내용을 검토한 뒤 공사비 산정에 오류가 인정되는 경우 조정된 공사비로 재입찰이나 재공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다. 또 공공기관의 귀책사유로 공사비가 삭감돼 낙찰자가 공사를 포기했다면 입찰보증금 몰수를 면제하고 부정당제제 면책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새누리당 소속 박성효 의원 등은 이같은 내용의 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국가계약법 등 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4대강 입찰담합 적발 등으로 건설업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고려해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법안에 관여했던 국회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공사비 삭감은 중소건설업계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으로 건설업 자체가 욕먹던 상황"이라며 "협치와 상생이 강조되는 요즘 재논의 분위기는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지영호 산업2부장

'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2026년부터 산업2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