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유승민·남경필, 새 보수정당 도전 결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1일(현지시간) 에이브러햄 링컨의 묘소를 찾아 대권에 대한 대망을 보다 구체화했습니다. 남북전쟁을 겪으며 분열 위기에 처한 미국을 하나로 통합한 링컨을 롤모델로 내세운 것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링컨 대통령 시절에 미국은 가장 심하게 분열돼 있었다. 링컨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미국인의 결속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하며 자신이 최근 밀고있는 '포용적 리더십'을 은연 중 투사했습니다.
반 총장은 '백만 촛불'이 켜진 조국의 현실이 미국 남북전쟁 당시처럼 극심한 분열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통합 대통령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극심하게 분열된 것은 국민들이 아니라 정치권, 특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지 말입니다.
오히려 링컨이 당시 보수정당의 사분오열 속에서도 보수당 정권을 창출했다는 점은 충분히 롤모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은 공화당이 미국의 보수정당의 대표격이지만 링컨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당시에는 아직 대통령을 한 명도 배출해보지 못한 신생 정당이었습니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이 공화당 출신 첫 번째 대통령이란 사실은 많이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공화당 이전에 보수정당의 위상을 갖고 있었던 것은 휘그당이었습니다. 링컨 역시 '미국 헌법과 연방에 대한 변함없는 애착'에 충실한 충성심 강한 휘그당원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각 지역별 '이익연합'으로 전락해가는 휘그당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재커리 테일러를 휘그당 대통령 후보로 밀면서 '올바른 휘그당 정책'에 대해 충고한 링컨의 핵심 주장 역시 지역 문제에 초연하고 국민들이 원하는 입법을 가능하게 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휘그당은 노예제 폐지 문제에 직면해 정당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부 지방의 휘그당 세력은 노예 제도 존속이 당 정책의 중심이라며 민주당과 다름없는 주장을 펼쳤고, 북부 지방의 노예제 폐지에 찬성하는 휘그당 세력은 1854년 공화당을 창당해 휘그당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휘그당은 처음부터 민주당 출신 앤드류 잭슨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만 뭉쳤을 뿐 보수정당의 정체성과 정책을 정립한 정당이 아니었습니다. 지역별 계파 간 어정쩡한 동거로 유지돼 온 한계가 뚜렷한 정당이기도 했습니다. 1836년 대선에서는 공통된 대통령 후보도 내지 못해 각각 동부와 남부 및 서부를 대표하는 3명의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 결국 대선에서 패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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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기로에서 휘그당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보수정당의 위상마저 새로운 정당에게 넘겨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꾼 링컨은 미헌법과 미독립선언서에 기초한 미연방은 절대로 갈라질 수 없다는 미연방 지지와 악의 제도인 노예제도의 변방확산은 절대로 안 된다는 노예제 폐지, 이 두 가지 신념을 공화당의 튼튼한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링컨 스스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미국 보수의 '백년 정당' 역사를 연 주인공이 됐습니다.
남경필 경기지사에 이어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위한 정치혁명을 위해 탈당을 선언했습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신념을 갖고 정치를 해왔다"며 "국민들께서 다시 마음을 줄 수 있고, 저희들 자식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는 보수를 만들기 위해 이런 결심(탈당)을 했다"며 '보수신당'으로 배를 갈아탈 수밖에 없는 심경을 설명했습니다.
유 전 원내대표보다 먼저 탈당의 칼을 뽑아든 남경필 지사는 "구체제를 성실하게 청산하고 미래비전과 대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정당다운 정당을 만드는데 저도 함께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친박연대'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인 새누리당 대신 신당의 길을 시사한 반 총장까지 이들이 새누리당 대신 새로운 보수정당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 후 새로운 보수정당의 가치를 인정받아 대선까지 승리할 수 있는 링컨의 길은 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