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정치를 망치는 방법[우보세]

분노가 정치를 망치는 방법[우보세]

김훈남 기자
2025.06.02 05:00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 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시 주요 3대 지수가 큰 폭 하락 마감했다. 다우 지수와 S&P 500 지수는 2년여 만에 가장 많이 하락했고, 빅테크 '매그니피센트7(M7)'은 동반 폭락했다. 2024.08.06. /사진=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시 주요 3대 지수가 큰 폭 하락 마감했다. 다우 지수와 S&P 500 지수는 2년여 만에 가장 많이 하락했고, 빅테크 '매그니피센트7(M7)'은 동반 폭락했다. 2024.08.06. /사진=

2021년 1월 '게임스톱'(GME)이라는 주식이 미국 증시를 뒤흔들었다. 오프라인 게임 유통업체인 게임스톱 주식을 헤지펀드가 공매도하자 개인 투자자들이 반대로 주가를 끌어올려 맞선 사건이다.

빌린 주식을 매도한 뒤 실제 주식을 사서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공매도는 전망이 어두운 종목으로 수익을 낼 때 쓰인다. 온라인 기반 구독서비스로 게임 산업의 중심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게임스톱이 공매도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미국의 인터넷 게시판 포털서비스 '레딧'의 서브 레딧(게시판) 중 하나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에서 시작된 개인 투자자의 집중 매수로 게임스톱 주가는 한때 500달러를 돌파했다. 하루에도 100달러를 넘나드는 주가 변동이 이어졌다. 주가가 급등하면 해당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하는 쪽은 큰 손해를 본다. 결국 공매도를 주도했던 헤지펀드 '멜빈 캐피탈'은 파산에 이르렀고, 게임스톱 사건은 개인이 기관을 이긴 사례로 남았다.

이 사건이 주목받은 건 개인 투자자들이 게임스톱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분노 때문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분쟁을 조장하는 소위 '트롤'들이 모인 WSB에선 월가와 도박의 합성어인 게시판 제목답게 투기성 거래 사례를 주고받는 일이 일상이었고, 여기서 '밈주식' 게임스톱이 탄생한 게 발단이다.

여기에 평소 도지코인 등 투자대상에 대한 글을 올리던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X(옛 트위터)를 통해 게임스톱 매수를 촉구하면서 불이 붙었다. 일부 WSB 회원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공적자금으로 살아남은 금융사들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헤지펀드가 우리의 게임스톱 주가를 떨어뜨리려 한다"고 개인투자자의 적개심과 분노를 자극했다. 군중심리가 작동하면서 게임스톱 주식은 투자대상이 아니라 기관투자자들을 혼내주기 위한 투쟁의 장으로 변질했다.

결국 게임스톱 사건의 충격은 시장 전체의 조정을 불러왔고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국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줬다. 개인 투자자들 역시 차익 실현에 성공한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수 손실을 봤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한 켠에선 게임스톱 사건과 비슷한 장면이 목격된다. 인터넷 게시판·유튜브를 떠도는 각종 음모론과 검증 없는 맹신, 좌우를 막론하고 상대 진영에 쏟아붓는 맹목적 비난과 분노가 냉철한 판단을 뒤덮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수차례 해명에도 끊이지 않는, 대선 후보마저도 동조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인 예다. 주요 정치권 인사의 부적절한 혐오성 발언, 지난 29~30일 사전투표에서 몇몇 투표자들이 보인 선거법 위반 행위는 분노의 부산물이 아닐까.

게임스톱 전쟁에 뛰어들었던 분노한 개인들이 전리품으로 챙긴 것은 '기관을 이겼봤다'는 허무한 성취감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이 게임스톱 사태의 결말과 닮아서는 안 된다. 승리를 위해 분노를 이용하고 상처내기 보다 대선 후의 회복을 고민해야하는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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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남 기자

안녕하세요. 정치부 김훈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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