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보는 세상]

"대한민국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해 재계 한 고위 임원이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메가 프로젝트 발표 후 "제가 확실히 책임지겠다"고 강조하고 일주일 만에 반도체 호남팹(Fab·공장) 부지로 광주 군 공항을 낙점헸다. 말에 그치지 않는 실행력을 보여준 것이다. 군 공항 부지 선정도 토지 보상 논의에 드는 시간을 단축시켜 공기를 크게 앞당기려는 속도전의 일환이다.
이 대통령은 후속 회의에선 "행정 지연으로 투자 집행이 늦어지면 안 된다"며 비합리적이고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와 호남팹을 동시에 추진하고 호남팹을 포함한 지역 발전·지원 방안을 담은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정부의 속도전에 재계도 대규모 투자 결단으로 화답했다. 삼성과 SK가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쏟아붓는 4755조원의 현실감 없는 투자금액이 발표됐다. 인공지능(AI) 혁명의 개화기에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정부와 재계가 공감대를 이룬 결과다.
남은 관심은 메가특구 특별법에 담길 가능성이 큰 '주 52시간 근로시간 예외 적용' 논의다. 재계가 첨단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대를 위해 오랜 기간 요구해 온 이슈다. 상상 이상의 자본을 쏟아 부으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추격 중인 중국에선 이미 '9·9·6'(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 문화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혁신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와 연구 인력들은 탄력 근로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대형 프로젝트 기간 야근을 밥 먹듯 하다가도 마무리되면 재택 근무로 전환한다.
주 52시간제는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 반도체특별법 제정 논의와 맞물려 수차례 공개토론을 하는 등 치열하게 고민했던 주제다. 당시 이 대통령은 경영·노동계 이야기를 모두 듣고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시간 유연화에 공감을 표했다. 최소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한 근무를 막아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한국노총을 찾아 "연구개발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본인이 원한다면 (근무시간을) 법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나"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반도체 특별법은 연초 국회를 통과할 때 노동계의 반대로 주 52시간제 예외를 담지 못 했다.
이 대통령의 속도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미국 실리콘밸리 일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24일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 모인 글로벌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의 3대 메가프로젝트 신속 추진에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협력 의사를 밝혔다. 반도체 공급 계약 등 성과도 적잖았다.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에 명운을 걸었다면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은 더 이상 고민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정부·여당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