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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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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창조경제 3년차다. 이제부턴 그동안 추진한 다양한 정책들의 성과를 기대해볼만 한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창업·벤처에 대한 관심과 시장의 반응이 높아지면서 양질의 기술창업이 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청장은 "15년 전의 벤처붐을 떠올리며 최근 창업 열기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지금 창업 기업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없이 오히려 '한류'로 인한 '코리아 프리미엄'을 갖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역량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청장은 "15년 사이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이 부상해 많은 창업·벤처 기업들이 시작부터 내수시장뿐 아니라 곧바로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삼을 수 있는 상황도 갖추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 청장은 "다만 지금까지는 창업지원과 벤처캐피털 투자에 있어 정부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며 "최근 자리 잡고 있는 '팁스'(TIPS, 민간주도형 기술창업프로그램)와 엔젤 투자, 크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앞으로 모바일과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지 없으면 10년 후 카드사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이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앞으로 카드 사업자가 '모바일 플랫폼'으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비즈니스 모델의 다변화를 위해 글로벌 시장 진출 역시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일까. 카드업계 부동의 1위사 신한카드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카드업계 처음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했고, 국내 모바일 카드 시장에선 올해 점유율이 기존 오프라인 카드 시장 점유율보다 무려 2배나 높을 전망이다. 사실 국내 카드업계는 사업성, 규제 이슈 등으로 해외 진출에 유독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신한카드는 7개월 여의 준비 끝에 이달초 카자흐스탄에 국내 카드사 처음으로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신한카드는 카자흐스탄 경험을 토대로 추가적인 해외 진출을 검토중이다. 신한카드는 또 20~30대 고객이 소비핵심주체로 부상할 10년 후를 벌써 내다본다. 지난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뒤 중앙대학교 교수를 거쳐 자본시장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까지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엘리트 경제학도의 코스'로 요약된다. 신원장은 이러한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다양한 정책자문 활동을 펼쳤는데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및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등을 두루 거쳤다. 화려한 이력을 갖춘 신 원장의 생활신조는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오늘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것처럼 살아라'인데 이는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지난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단에서 인용한 말이기도 하다. 여가시간에도 주로 금융에 대한 역사나 금융투자업계 전설적인 인물들의 전기를 주로 찾아서 본다는 신 원장이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그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이해관계자가 여럿 얽혀져 있기 마련"이라며 "누가
"자본시장은 국제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존환경이 악화돼 왔습니다. 기업이든 자본시장이든, 생존환경 악화에 직면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혁신역량 제고입니다. 자본시장 선진화는 결국 혁신주체에 의해 일어납니다. 투자자가 규제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사적시장이 창출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거래소 지주회사 개편문제에서 핀테크 활성화, 자본시장 규제완화까지.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를 꿰뚫는 논리는 일관되고 명료했다. 바로 혁신과 진화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 내에 실험을 독려하는 한편 어느 정도의 실패도 용인해 줄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신 원장을 만나 한국의 자본시장이 직면해 있는 현안과 발전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4월 자본시장연구원장에 취임한 이후 약 1년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연구원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 ▶자본시장연구원의 사명은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을 통해
‘K·B·S’ 지식(Knowledge)·행동(Behavior)·기술(Skill)의 앞글자를 모은 이 단어는 손연기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장이 평소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맡은 분야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앎을 실천할 수 있는 행동, 업무에서도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사람이 되자’는 의미다. 물론 본인도 이를 실천하고 있다. 손 원장은 정보, 현장, 조직을 두루 섭렵한 ‘3통(通)’을 갖춘 리더로 통한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정보통’인 손 원장은 1995년 한국정보문화센터 정책연구실장을 시작으로 20년간 줄기차게 한 분야만 팠다. 정보통신부와 산하 기관, 국무총리실 등에서 정보화 관련 업무를 도맡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정보사회학과에서 사회학과 정보화에 대해 강의했다. 학구열이 뜨겁다. 개발원에 취임한 후 처음 했던 일이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린 것이었다. 중앙행정기관의 정책이나 기술을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이 많은 조직
“혹시 직업이 ‘원장’ 아니신지….” 지인들로부터 이런 농을 듣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받아치는 답변에도 어색함이 없다. “그러게요. 원장만 8년하고 있네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업인 사립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8년째 ‘원장’ 직함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100퍼센트 농담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 손연기(57) 원장(사진) 얘기다. ‘교수 사직’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기관장을 자처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사회에 나와 첫 발을 디딘 한국정보문화센터(한국정보문화진흥원 전신)에 있을 때 진 ‘빚’ 때문이다. 당시 IMF 금융위기 사태 여파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후배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들었던 죄책감은 늘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숭실대 교수로 가 있던 중 다시 원으로 돌아와 조직을 맡아달라는 정부의 부름을 받은 그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아내가 말렸지만 휴직계가 아닌 사직서를 냈다. 이 얘기는 IT업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0.08%의 중견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10%, 수출의 16%를 차지합니다. 중견기업을 현재보다 10배 확대하면 청년실업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62)은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는 중견기업이 두터워지는 게 경제 활성화의 핵심이지만 정작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순간부터 적합업종이나 공공구매 입찰 제한 등 수많은 차별적 규제로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규제를 완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늘고 대기업으로 커 나가도록 지원하면 고질적인 고용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의 규모를 잣대로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나눠 지원과 규제를 달리하는 정부 정책의 대전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이 때문에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스스로 멈춰버리는 '피터팬 증후군'을 초래해 경제적 손실을 일어나고 있다"며 "무조건적인 보호나 지원정책이 아니라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신현성 티켓몬스터(이하 티몬) 대표(30·사진)는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나 9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재미교포다.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이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처조카이기도 하다. 미국 버지니아 주정부가 설립한 특성화고교인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에 다니며 프로그램 개발 등 정보기술(IT)에 대한 기본 소양을 익혔다. 이후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인 펜실베이니아대(유펜) 경영대(와튼스쿨)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입사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당시 연봉이 3억원이었고 맥킨지보다 2배 많은 연봉을 제안한 기업도 있었지만 과감히 포기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창업에 대한 신 대표의 열망이 더 컸다. 무엇보다 젊은시절 한국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다고. 만 25세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한국 최초 소셜커머스 업체를 만들었을 만큼 당차고 도전정신이 강한 스타일이다. 대학시절 미국에서 대학생들에게 빈방·기숙사를 소개하는 '사
2010년 만 25세였던 청년 5명이 각각 100만 원씩 500만원을 모아 인터넷 사이트 '티켓몬스터'(이하 티몬)를 만들었다. 티몬은 음식점과 여행상품 티켓을 반값에 판매하는 국내 최초 소셜커머스의 시작이 됐다. 대학생 인턴직원 40명을 뽑아 밤낮없이 발품을 팔며 반값 상품을 찾아다니던 티몬은 출범 5년 만에 직원 1000여 명, 매출 1575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티몬은 창업한 지 1년만인 2011년 미국 소셜커머스 업체 '리빙소셜'(3000억원)에 매각됐고 그 후 2년만인 2013년 글로벌 소셜커머스 1위 업체 '그루폰'(2750억원)에 재매각되며 시장을 깜짝 놀라게 만든 회사이기하다. 하지만 2차례 인수합병(M&A)을 거치면서 지분을 모두 처분, 창업자에서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신현성 티몬 대표(30·사진)는 악성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사업이나 수익성보다 몸집 불리기에 치중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자금난과 현금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묵묵히
박종복 한국SC은행장은 지난 1월 8일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한국SC은행장에 취임하며 주목을 받았다. 영국에 본사를 둔 SC그룹이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해 설립한 한국SC은행은 전임 아제이 칸왈 행장이 8개월 만에 물러가기까지 모두 외국인이 행장을 맡아왔다. 박 행장은 "한국에 맞는 청사진을 조만간 제시하겠다"며 취임 직후부터 한국인 출신의 강점을 십분 살리겠다는 취지를 꾸준히 밝혀 왔다. 현장 직원과 소통하고 영업현장을 자주 방문해 고객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취임 직후의 일성도 한창 '실천 중'이다. 아울러 그는 1979년 제일은행에 입행해 35여년 간 현장을 두루 거친 정통 '뱅커'다. 제일은행 시절부터 여러 영업점과 프라이빗뱅킹(PB), 소매금융 사업을 책임져 왔던 현장 경험은 제일은행을 전신으로 둔 한국SC은행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아 왔다. 실제로 한국인 행장으로서의 소통 능력과 현장 경험은 취임 후 100여 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국SC은행의 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한국 최고의 국제적 은행으로서의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6000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500만 고객을 갖고 있는 만큼 한국 내 은행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는 동시에 글로벌 은행의 독보적인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 한국SC은행장에 취임한 박종복 행장이 22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방점을 찍은 단어는 역시 '한국'이었다. 소매금융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로컬은행과 다른 '체질'을 인정하면서도 제일은행을 전신으로 한 만큼 한국 은행으로서의 DNA와 가능성이 살아있다는 의미에서다. 동시에 박 행장은 '글로벌' 은행으로의 차별화된 장점을 놓치지 않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영국계 금융그룹인 SC의 한국지사로서 전세계적인 영업망 등 SC 그룹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서울 종로 한국SC본사 집무실에서 취임 100여일을 맞은 박종복 행장을 만나 한국SC은행의 현안과 비전을 들어봤다. -한국인으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환경 전문가다. 환경부에서만 20년을 넘게 일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환경부 사무관 출신으로는 첫 장관이다. 195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윤 장관은 충주공업전문고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1976년 건설부 7급 공무원으로 공직 첫발을 디뎠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밤을 낮 삼아 공부해 1977년 13회 기술고시에 합격, 문화공보부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다가 1987년 환경부 전신인 환경청 사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환경처에서 환경부까지 폐수관리과장, 폐기물정책과장, 수질보전국장, 환경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2005년 1급(고위공무원 가급) 자리인 국립환경과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8년에는 환경부 외청인 기상청에서 차장을 맡았다. 이후 한양대 환경공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채용됐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환경특보, 지속가능국가추진단장을 거쳐 2013년 3월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다.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두 알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