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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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7일 새벽, 당시 광주광역시(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복층 구조물이 붕괴해 2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 수사 결과 업주가 1년 전 비슷한 사고를 겪고도 구조물을 보강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던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을 받았다. ━40명이 오른 복층…버티지 못한 구조물━사고 당일 새벽, 주말을 맞아 광주 서구 상무지구의 나이트클럽 '코요테 어글리'에는 약 370명의 손님이 몰려 있었다. 클럽은 건물 2~3층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계단 옆 약 2. 5m 높이에는 원형 바 2개가 설치된 26㎡(약 8평) 규모의 복층 구조물이 있었다. 문제는 구조물의 안전성이었다. 하부 기둥 없이 상판만 설치된 구조여서 1㎡당 약 35㎏의 하중만 견딜 수 있었지만, 사고 당시에는 약 40명이 한꺼번에 올라가 춤을 추면서 1㎡당 123㎏의 무게가 실렸다. 결국 구조물은 버티지 못하고 아래층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20대와 30대 남성 2명이 숨졌고, 32명이 다쳤다.
"장애인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 2016년 7월 26일.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은 한 남자의 이 같은 왜곡된 믿음에서 시작됐다. 그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의 장애인 시설 '쓰구이야마유리엔'에 침입해 장애인 19명을 살해하고 27명을 다치게 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스스로 몸을 움직이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범행 대상으로 삼는 기준은 '말할 수 있는지'였다. ━"말할 수 있나" 확인 후 잔혹 범행━범인은 당시 26세 우에마쓰 사토시(植松聖)였다. 우에마쓰는 이날 오전 1시43분쯤 자신이 3년간 근무했던 장애인 시설 쓰구이야마유리엔에 침입했다. 출입문이 잠겨 있자 창문을 깨고 내부로 들어간 그는 순찰 중이던 직원을 붙잡았다. 그는 직원에게 "장애인을 죽이러 왔다. 방해하지 마라"고 말하며 범행을 이어갔다. 우에마쓰가 피해자를 고른 기준은 말할 수 있는지였다. 그는 "이 사람은 말할 수 있냐?"고 물은 뒤 직원이 "말할 수 없다"고 답하면 공격했다.
2000년 7월 25일.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을 출발한 에어프랑스(AF) 소속 콩코드 4590편이 화염에 휩싸여 한 호텔로 추락했다. 이륙 88초 만이었다. 이 비극적 사고로 승객 100명과 승무원 9명, 호텔 직원 4명 등 총 113명이 사망했다. 세계 최초 초음속 여객기로 유명했던 콩코드는 활주로에 떨어져 있던 43㎝ 길이의 금속 조각 하나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활주로 위 금속 조각 하나가 만든 비극…이륙 88초 만에 추락━콩코드 AF4590편은 사고 당일 오후 3시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출발 직전 기체 결함을 수리하느라 예정보다 늦은 오후 4시42분쯤 이륙했다. 문제는 활주로 위에 있었다. 약 5분 먼저 이륙한 미국 콘티넨털항공 DC-10의 엔진 덮개에서 길이 43㎝의 티타늄 소재 금속 띠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한 AF4590편은 활주로를 내달렸고, 결국 부품을 밟고 지나가 왼쪽 랜딩기어 앞바퀴 타이어가 손상됐다. 시속 300㎞가 넘는 속도에서 튕겨 나온 대형 타이어 파편은 날개 아래를 강하게 가격했다.
2016년 7월24일. 성매매를 거부하며 모텔을 나가려던 14세 가출 여중생을 살해한 이른바 '봉천동 여중생 살인사건' 범인 김모씨(당시 38세)에게 징역 40년이 확정됐다. 1심은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강도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판단해 강도살인죄를 인정하며 형량을 징역 40년으로 높였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돈 받고도 제대로 안 해"…14세 여중생 살해━김씨는 2015년 3월26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모텔에서 성매매 목적으로 만난 가출 청소년 A양(당시 14세)을 살해했다. 그는 A양이 "돈을 받고도 성관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고, 이에 화가 난 A양이 방을 나가려 하자 침대에 넘어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어 클로로포름이 묻은 거즈로 입을 막아 숨지게 했다. 범행에 사용된 클로로포름은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는 마취 성분으로 독성이 강해 공업용이나 동물 박제 등에 사용된다. A양이 숨진 뒤 김씨는 성매매 대금 13만원을 비롯해 휴대전화와 욕실에 있던 수건, 칫솔 등 증거가 될 만한 물품을 챙겨 달아났다.
20년 전인 2006년 7월 23일, 당시 대서(大暑)였던 탓에 극심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경찰들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쫓고 있던 때 외국인 남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112에 전화를 걸어왔다. 해당 남성은 프랑스 국적의 장 루이 쿠르조(당시 40세)였다. 오전 11시쯤 경찰에 연락한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우리 집 냉장고에 어린아이 시체 2구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냉장고 내부 모습을 보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는 태반과 탯줄을 몸에 두른,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백인 남아 시체 2구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범인 의심받은 신고자와 가정부…둘 다 아니었다━ 시체 2구는 각각 냉동실 네 번째 칸과 다섯 번째 칸에 얼음덩어리를 뒤집어쓴 채 들어있었다.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범행에 경찰은 곧바로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사건 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숨진 아기들이 몸무게 3㎏ 남짓의 신생아인 것으로 파악했다. 아기들은 출생 직후 살해당한 뒤 냉동실 안에 넣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2018년 7월22일. 검찰은 제주에서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며 신도들을 세뇌하고 착취해온 40대 남성 김모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김씨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던 20대 초등학교 교사를 폭행해 숨지게 한 뒤 범행 흔적을 지우고 119에 신고해 범행을 숨기려 한 인물이었다. 김씨는 제주 지역 교회 등을 돌며 "나의 말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20~30대 청년들에게 접근했다. 이후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이들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한 뒤 금전을 요구하고 집안일과 노동을 시키며 통제했다. ━상담자로 접근해 세뇌…집안일까지 시킨 김씨━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이었다. 당시 외할머니가 사망하고 이듬해 외할아버지의 건강까지 악화하면서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A씨는 학교 선배 소개로 김씨를 알게 됐다. 김씨는 자신을 미국 버클리 음대 출신 작곡가라고 소개하며 신뢰를 얻었다. 이후 상담을 해주겠다며 접근했고, 점차 종교적 멘토를 자처하며 A씨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했다.
3년 전 오늘이었다. 2023년 7월 21일 오후 2시 7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역 4번 출구 근처 골목에서, 조선(당시 33세)이 갑작스레 흉기를 꺼냈다. 조선의 눈에 들어온 건 건물 앞에 있던 피해자 김모씨(당시 22세)였다. 조선은 김씨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김씨도 처음엔 격렬히 저항했으나 계속되는 공격에 심한 자상을 입었다. 힘이 빠져 쓰러지자 조선은 김씨를 한 번 더 공격했다. 피해자는 마지막까지 살려달라 애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은 13회나 피해자의 목, 얼굴, 팔 등을 칼로 찔렀다.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과다출혈로 숨졌다. 심폐소생술도 못 받을 정도였다. 범행은 계속됐다. 조선은 번화가쪽으로 이동해, 마주친 30대 남성 3명을 잇따라 공격했다. 피해자들의 목, 등, 얼굴 등에 흉기를 휘둘렀다. 이중 중상을 입어 생명이 위태롭던 피해자도 있었으나, 수술을 받아 다행히 살았다. 이후 조선은 흉기를 들고 주변을 배회했다. 흉기를 든 채 웃는 걸 봤단 목격자 증언도 나왔다.
2025년 7월20일 오후 9시30분쯤,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 60대 남성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한창이었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 외국인 가정교사까지 모인 평범한 생일잔치는 갑작스러운 총성과 함께 악몽으로 변했다. 남성은 미리 준비한 사제총기를 꺼내 아들을 향해 발사했고 며느리와 손주, 가정교사까지 위협했다. 범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 자택에 폭발 장치까지 설치해 또 다른 참사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제총기 살인 사건으로 기록된 '인천 송도 살인 사건' 가해자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며 상고했다. ━사제총기 꺼내 아들 향해 두 차례 발사━사건 당일 60대 A씨는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아들 B씨(당시 34세) 집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임대 차량에서 미리 준비한 사제총기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B씨를 향해 두 차례 총을 발사했고 현장을 빠져나가던 독일인 가정교사를 향해서도 두 차례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탄이 빗나가거나 불발됐다.
2023년 여름은 기록적인 장마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6월부터 9월까지 집중호우가 발생하며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경상북도 예천군도 피해지역 중 하나였다. 그해 7월 19일,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내성천 보문교에서는 실종자 수색 작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 작전에 투입됐던 스무살 청년은 그날로 세상을 떠났다. 일명 '채상병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적 책임자가 확정되지 않은 채 '현재 진행 중'이다. ━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 투입…실종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2023년 7월 중순, 경북 북부에는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내렸다. 특히 예천군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났고 하천이 범람해 급류가 발생하는 등 피해 규모가 컸다. 실제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여러명이 실종됐다. 이에 정부는 경찰과 소방 뿐 아니라 군 병력도 실종자 수색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해병대 1제1사단이 예천 일대에 병력을 투입했다. 투입된 병력 중에는 스무살 채수근 상병도 있었다. 2003년생인 그는 2023년 3월 27일 해병대 1292기로 입대했다.
2021년 7월18일, 제주에서 중학생 김모군(당시 16세)이 어머니의 전 연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별을 통보받은 데 앙심을 품고 아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별 통보에 앙심…신변 보호도 막지 못한 범행━백광석은 피해자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피해자 어머니가 관계를 정리하자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겠다"며 협박을 이어갔다. 백광석은 2018년부터 피해자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당시 김군은 그를 '아빠'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이후 피해자 어머니를 상대로 집착과 폭력을 이어갔다. 별거 이후에도 피해자 집에 침입하거나 목을 조르는 등 위협을 계속했고, 법원은 사건 발생 약 2주 전인 2021년 7월 4일 백광석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피해자 어머니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고, 경찰은 주거지에 CCTV 2대를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했다. 그러나 끝내 범행을 막지는 못했다. 범행 당일 백광석은 공범 김시남과 함께 피해자 집 주변에서 어머니가 외출하고 김군이 혼자 남은 사실을 확인한 뒤 약 6시간 동안 범행 기회를 노렸다.
2014년 7월17일. 세월호 참사 수색 지원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소방 헬기가 광주 도심 한복판에 추락해 탑승한 소방관 5명이 모두 순직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아 대형 인명 피해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은 이들 희생은 대한민국 소방 역사에 가슴 아픈 비극이자 숭고한 헌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평화롭던 도심을 뒤흔든 비극━당일 오전 10시 54분, 광주 도심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도로. 평범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늘에서 소방 헬기 한 대가 급격히 추락했고 곧이어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CCTV에는 폭발음이 들리자 인근 택시 승객들이 황급히 차량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담겼다. 약 100m 떨어진 식당의 유리창이 기체 파편에 깨질 정도로 충격은 컸다. 추락한 헬기는 세월호 참사 수색 구조 지원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강원소방본부 소방항공대 소속 헬기였다. 사고 당일 소방대원들은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지원하기 위해 오전 8시47분 광주비행장을 출발해 팽목항으로 향했다.
27년 전인 1999년 7월 16일,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됐다. 감방 천장에 달린 환풍구를 통해 탈옥한 지 2년6개월(907일) 만이다. 탈옥 후 6차례나 경찰을 맞닥뜨린 신창원은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900여일 동안 신창원 체포에 동원된 경찰 인력만 97만명에 달했고, 이 중 57명은 그를 놓친 책임으로 파면·해임·전보 등 조치를 당했다. 463만장의 수배 전단이 전국에 뿌려진 가운데 신창원의 도주극은 한 가스 수리공의 제보로 막을 내렸다. 사회와 영구 격리된 그는 2011년과 2023년 자살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해 현재는 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생활 중이다. ━ 무기징역 복역 중 탈옥 계획…빼돌린 톱으로 쇠창살 절단━1967년 5월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난 신창원은 열 살이 채 되기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는 가정폭력을 당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출을 밥 먹듯 한 그는 결국 중학교 진학 3개월 만에 퇴학당했고, 15세 때인 1982년에는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