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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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우연히 상대 당 의원과 마주칠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지나가듯 "거, 요즘 너무 소리를 지르시는 것 아닌가"라고 말을 건넸다고 했다. 반박을 쏟아낼 거라 생각했던 상대는 오히려 웃으며 "저 생계형 정치인이잖아요. 다음 총선 때 재선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라고 했다고. 사실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리 이상한 광경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지지를 얻고 다음 선거를 통해 정치 생명을 또 한 번 연장하기 위한, 그저 '생계'를 위한 것이라는 얘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실제로 요즘 '생계형 정치인'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여의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본인의 신념을 펼쳐보이기 보단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고 한 번 더 배지를 달려고 당 지지자나 지도부의 눈치만 보는 이들 말이다. 비상계엄에 이어 탄핵 국면까지, 말 한 마디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민감한 비상시국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들지만...동시에 변화의 신호탄이란 점에서 반갑죠."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 적용 여부를 둘러싼 여야의 '반도체 특별법' 공방과 관련, 반도체 업계만 대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현실에 대해 한 부러움과 타 산업군 적용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교차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작은 기대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7일 여야가 52시간 예외 조항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반도체 특별법 처리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노동시간 유연화에 공감한단 취지의 발언을 해 기대감이 높아졌던 만큼 실망감 또한 컸다. 우리나라에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건 전쟁 중이던 1953년 5월이다. 부산 조선방직의 열악한 작업 환경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일으킨 이른바 '조방쟁의'가 도화선이 됐다. 1970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희생하며 부르
"정부가 뭘 하겠다고 발표해도 지금처럼 (정책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움직이기 쉽지 않아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기업 관계자는 요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기업들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국에서 외국 기업들이 투자하기 힘든 이유가 '예측하기 힘든 규제 환경'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국가의 리더십이 부재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회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과연 그런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지난해 말 정부가 제출한 세법 개정안을 포함해 190개 안팎의 법안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여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는 바람에 비쟁점 법안들까지
"글쎄요. 믿을 수 있을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보이는 '우클릭' 행보에 대해 한 기업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의 실용주의적 발언들이 진심인지, 선거용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취지다. 만약 조기대선이 현실화된다면 선거는 '이재명 대 반(反) 이재명' 구도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이 대표의 우클릭을 믿을 수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조기대선 결과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아직 유권자들이 이 대표의 진심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속도가 붙긴 했지만 이 대표의 우클릭 행보가 하루 아침에 나온 건 아니다. 지난해 당대표 연임 도전 당시 이 대표는 이미 '먹사니즘'이란 신조어를 꺼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이념보다 우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에너지 고속도로'와 같은 성장 전략도 내놨다. 기자들과 대화하던 중 1가구 1주택에 한해 종합부종산세(종부세) 완화가 필요해보인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특히 지난해 말 당내 일부 반
"지금 정치 구조에선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서로 더 잘하려고 경쟁할 필요가 없어요."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하고 탄핵 정국이 시작된 이후 주목받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 묻자 한 헌법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정당은 4년마다, 5년마다 전쟁을 치른다. 4년짜리 총선에서 승리하면 입법부를, 5년짜리 대선에서 승리하면 행정부를 점령한다. 승부엔 많은 표차가 필요 없고 과반 득표 역시 필수적이지 않다. 단 한 표 또는 단 한 석이라도 경쟁자보다 많이 차지하는 쪽이 다음 선거가 올 때까지 입법 주도권 또는 대권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방식이다. 1위가 아니면 모두 무의미한 '죽은 표'가 된다. '승자독식' 승부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 지금처럼 양당제 정치구조가 공고한 상황이라면 상대 진영의 실책은 자기 진영의 이득이 된다. 각 정당이 애써 잘하려 들지 않고 상대 진영을 깎아내리는 데
"김정은은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한국 외교가가 뒤집혔다. '실질적 핵 보유국'을 뜻하는 '뉴클리어 파워'는 그동안 미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사용한 표현이 아니다. 자칫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어서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지명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란 표현을 썼을 때 우리 외교부는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핵 보유국을 지칭하는 공식 외교 용어는 뉴클리어 파워가 아닌 '뉴클리어 웨폰 스테이트'(nuclear-weapon state)라는 등의 논리였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외교부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및 대선 과정에서의 언급과 같은 맥락일 뿐 북한 비핵화는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원칙"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핵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는 아직 그들 스스로조차 명확하지 않을
"딱 보면 견적이 나온다." 2021년 10월31일 KBS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10차 토론회. 윤석열 당시 예비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랜 세월 검찰에서 부패사건을 많이 다뤄왔다"면서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상대 후보를 범죄자로 낙인찍은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 이재명 후보는 과반의석을 가진 제1야당의 당권을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한동안 이 대표와 마주앉길 거부했다. 이 대표를 범죄자로 예단했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범죄자와 정치적 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검사 출신의 자존심이었을까. 결국 정국은 대화 없는 양 진영의 극한대결로 치달았다. 당정 관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여당인 국민의힘의 수장은 10번 넘게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이준석 전 대표가 축출된 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1년도 안 되는 사이 두 번이나 스스로 당권을 내려놔야 했다. 지난해 4·10 총선
#1.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가 남긴 역작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대문호는 프랑스 대혁명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단두대로 대표되는 무자비한 학살극에 그는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디킨스가 대혁명의 당위를 부정한 건 아니다. 혁명 전 '앙시엥 레짐'(구체제) 당시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도 그는 연민의 시선을 던진다.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의 사료를 토대로 쓴 이 소설에서 디킨스가 개탄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닌 혁명 과정의 야만성이었다. 아무리 혁명의 명분이 순수해도 피에 굶주린 이들이 혁명의 깃발 아래 자행하는 야만적 보복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 #2.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다." 영국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말이다. 서양 철학의 어떤 줄기든 플라톤이란 뿌리에 빚지고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현대 정치
"당내에서 '길게 봐라. 조금만 버티면 (더불어)민주당이 사고 칠 것이고,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란 말들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장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비상계엄·탄핵 정국에서도 이 당의 쇄신과 변화가 요원한 이유"라며 이같이 말했다. 굳이 힘들게 뼈를 깎는 쇄신과 개혁을 하지 않더라도 경쟁상대인 민주당이 큰 실책을 범하면 그 반사이익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인식이 여당에 팽배하단 얘기다. 얼마 후 민주당발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터졌다.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전용기 의원은 10일 "커뮤니티,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것은 충분히 내란 선전으로 처벌받는다"며 "단순히 일반인이어도 내란 선동이나 가짜뉴스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사적 대화를 검열하느냐는 비판이 빗발치자 민주당은 "카카오톡상으로 퍼지는 내란 선동과 가짜뉴스 제보를 통해 접수받고 이를 토대로 문제 여부를 검토하겠단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내란 선전
#1. 2024년 10월1일 저녁 8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들고 나왔다. 식사와 함께 여야 정치인 등 시국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계엄 필요성이 논의됐다. 검찰이 지난달 27일 김용현 전 장관의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이다.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이들을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여 사령관 등이 지난 3월부터 계엄 전까지 만난 횟수만 최소 7차례. 대통령 관저, 국방장관 공관, 삼청동 안가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계엄 전 '반국가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시대착오적 인식은 결국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
얼마 전 한 중진의원과의 식사 자리에서다. 이 의원은 "제가 꼰대 같아 보일 지도 모르겠는데"라며 운을 뗐다. "초선은 물론이고, 재선 의원들까지도 상대 정당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봐요. 그게 지금의 국회라니까요." 그는 왜 초·재선 의원이라고 콕 집어 얘기했을까. 이유를 묻자 이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두 차례의 총선에서 연이어 압승을 거둔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 쪽의 의석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굳이 상대방과 대화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초·재선 대부분이 상대 정당과 치열하게 협상해본 경험이 없어요" 그러자 한 동석자가 말을 보탰다. "생각해보니 재선 의원들은 코로나19 시절 처음 국회에 들어와 처음에 사람을 만나며 의정활동하는 게 어려웠겠네요." '협치 실종'은 더 이상 여의도에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젠 협치가 없는 게 '뉴노멀'(새로운 질서)이란 말까지 나온다. 여야 간 소통 단절은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요즘 녹취 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모 야당 의원에게 "여당 의원들과도 만나서 대화 하시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렇게 만났다가 몰래 녹취라도 따이면 큰일난다"는 게 그가 여당 의원들과 만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국회는 정치를 하는 곳이고, 정치는 곧 대화와 타협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상대방을 정치적 타협 대상이 아니라 몰래 녹취하고, 언제든 법적으로 공격해올 수 있는 존재로 보는 게 오늘날 국회의 현실이다. 과거엔 어땠을까. 한 번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당시 최전선에 있던 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엔 표결을 앞두고 이탈표를 끌어내기 위해 양 진영 사이에 치열한 물밑 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전한 지금은 현실은 8년 전과 크게 달랐다. 그는 "요즘은 만나서 커피 한 잔 마시기도 힘들다"고 했다. 20대 국회까진 가능했던 게 22대 국회에선 불가능해졌다. 탄핵 국면 이후 더욱 극심해진 여야 대치 상황도 애초에 정치가 작동했다면 없었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