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국방부와 가까운 대통령실 공간의 문제와 무관치 않아

#1. 2024년 10월1일 저녁 8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들고 나왔다. 식사와 함께 여야 정치인 등 시국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계엄 필요성이 논의됐다.
검찰이 지난달 27일 김용현 전 장관의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이다.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이들을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여 사령관 등이 지난 3월부터 계엄 전까지 만난 횟수만 최소 7차례. 대통령 관저, 국방장관 공관, 삼청동 안가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계엄 전 '반국가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시대착오적 인식은 결국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대통령 당선 1000일째 되던 날이다.

#2. 2022년 3월20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직접 지시봉을 들고 발표에 나섰다. 그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청와대라는 폐쇄적 공간이 대통령의 제왕적 의식을 만든다고 했다. 용산으로의 대통령실 이전 발표는 대통령 당선 열흘 만에 열린 첫 기자회견이었다.
맞는 말이다. 사회심리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리처드 니스벳 미국 미시간대 석좌교수는 인간의 행동 결정에 개인 성향 못지 않게 주변 상황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방부 청사 경내를 새 대통령실의 위치로 정한 건 훌륭한 선택이었을까.
대통령실이 국방부 건물로 들어가면서 국방부는 바로 옆 합동참모본부 건물로 옮겼다.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나란히 위치하게 된 셈이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과 '충성을 다하는 장군들'과 7차례 이상 계엄을 논한 게 대통령실의 위치적 요인과 무관했을까.
계엄 당일에도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합참 지하 벙커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군인의 최대 덕목은 충성이지만, 국회 장악 등에 병력을 투입하라는 위법한 명령까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출세욕이 강한 정치군인이라도 비상계엄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듣고 한 번에 받들었겠나. 대통령과 수차례 만나면서 설득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대통령실이 국방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나 장군들을 만날 기회가 훨씬 적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