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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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면서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면 과거에 머물러 살지 않는게 중요하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는 특히 그렇다. "내가 OO할때 걘 복사하고 있었잖어" "그 친구, 아직 애지 뭐" ""걔가 뭘 잘 몰라서 그래" 이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말이다. 한참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후배가 따져 보면 이미 내가 팀장, 부장 했던 나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놀란다. 나이 뿐 아니라 능력도 그때 나보다, 아니 지금 나보다도 훨씬 낫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한 오래전 기억이 현실까지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부침(浮沈)이 빠른 정치권 근처에 있다 보면 그런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국정감사 자리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의 비서관들을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표현했다. 유의원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때 30대였던 '얼라'들은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대통령의 소통 길목을 지키는 '휴대폰 권력'이 돼 있었다. 공
5석짜리 정당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것도 한국 정치현실에서. 19일 국회 의원회관. 정의당 당대표 선출 보고대회에서 기록영상을 틀자 배경음악으로 '노킹 온 헤븐스 도어'(밥 딜런)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랫말 중 'It's getting dark, too dark to see'란 구절이 귀에 박혔다. 오역의 위험이 있지만 '점점 캄캄해져, 볼 수가 없어' 정도의 뜻이다. 정의당은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은 '미니정당'이다. 현재 정치구도에선 찬반 투표수가 팽팽할 때 결정력을 갖는 캐스팅보트 역할도, 독일 녹색당처럼 집권연정의 한 축이 되기도 어렵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심 대표가 유일하고 다른 네 명(김제남 박원석 서기호 정진후 의원)은 비례대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집권의 꿈은 멀어졌다는 게 정의당 바깥의 냉정한 평가다. 20대 총선을 바라보는 지금, 교섭단체(20석) 구성조차 쉽지 않다.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사상 유례없는 진통을 극복하고 그 멍에를 떨치는 데에도 적잖은 노력
"완전히 현실 정치인이 된 것도 아니고 자기 정체성을 버리지도 못하고, 옆에 있는 놈들은 90도 사과하라고 하고……. 하고 나서도 이렇게 한 것이 내 철학과 맞는 지 고민이 있었다. 마지막(사퇴) 이틀 전에는 아주 힘들어 했다. 내가 보기엔 죽을 자리를 찾아간 것이었다. 저 자리에서 죽겠다고."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사퇴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천하의 유승민'도 인간일 뿐이고 정치적 시련을 처음 겪어 본 '초짜'였다. '준비되지 않았던 거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배신의 정치'와 '소신 정치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햄릿'이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청와대의 반발이 의외로 격렬하게 터져나오자 유승민은 "욕을 하도 먹어서 이제 이골이 났다"면서도 "'BH'의 욕을 덜 먹는 방법이라도 찾아봐야겠다"며 농반진반 걱정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진노를 풀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야겠다며 "일본 정치인들이 사과할 때 90도로 허
#1. ‘선거는 민주적인가’. 국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는 행위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발끈할 이야기지만 버나드 마넹은 동명의 저서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선거는 투표와 출마에 대한 기회의 평등은 보장하지만 실제 선거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 즉 돈이나 인적 네트워크, 사회적 인지도 등은 불평등하므로 늘 국민보다 이 같은 자원이 풍부한 소수에게 유리한 과두적 제도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주권을 행사한다고 믿지만 늘 정치는 '정치꾼'들에 농락당하는 '배신의 정치'가 바로 선거 때문이라는 기막힌 사실이다. 마넹은 선거의 비민주적인 속성을 보완해줄 장치를 '숙의 민주주의'로 봤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공적 토론을 중시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의사 결정 존중이 뒤따라야만 선거의 민주성이 담보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여당 원내대표와 의회민주주의의 결과물로 탄생한 법안이 내팽겨쳐지는 최근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마넹의 '이런 고민'은 파
#그들도 실로 멀쩡한 머리들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의 밤은 술퍼먹느라 격렬했다. 회사 데스크는 아침에 출근해 얼굴에 묻은 오바이트 자국을 씻다가도 뭔가에 열받아하며 서둘러 후배기자들을 조지는 일이 매번이었다. 입사한지 두달 남짓, 기자들은 벌써 우라까이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그 무르익음은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의 손가락 속으로도 찰지게 스며들어 이젠 기자가 기사를 쓰는게 아니라 타매체 기사가 그냥 저절로 빨려들어오는 듯 했다. 기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건 물론 편집국장이었다.... 표절의 기쁨은 그 신속성과 생산성에 있다. 신경숙이 표절한 대목을 또 표절해서 이렇게 긁적거리는데 실로 1분도 안걸린다. 써놓고 보면 또 얼마나 번듯한가. '기쁨을 아는 몸' 이런 단어, 혼자 생각해내려면 몇개 안남은 머리카락 하루 종일 쥐어짜도 안될 일인데.. 후배 기자가, 자기 기사를 베껴 쓴 기사를 발견하곤 '너무한거 아니냐고' 기가 막혀 하길래 읽어 봤다. 나름 순서를 바꾸는 등의 '가공'
3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마스코트 '누리비'의 깜짝 등장이 인상적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참석한 게 '뉴스'였다. 이 원내대표는 당직인선을 둘러싸고 문 대표와 마찰을 빚으면서 일주일 가량 최고회의에 불참했다. 그랬던 이 원내대표가 2일 문 대표와 심야 담판을 거쳐 당무에 복귀했다. 이 원내대표가 그동안 국회법 거부권,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 현안에 따라 문 대표와 수시로 접촉했기 때문에 '전면 보이콧'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공식' 참석은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 한 걸음 나간 것이다. 문재인-이종걸 두 사람은 지난달 30일 팔을 서로 엇걸어 소주잔을 기울이는 '러브샷'으로 화해 기류도 드러냈다. 대통령이 국회법 거부권을 행사한 지난달 25일부터 열흘 가까이는 새정치연합에게 모처럼 한숨 돌리는 시기였다. 당 밖의 정치이슈가 폭발하면서 내부 갈등은 국민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국회로 돌아온 국회법 탓에 친
1905년 7월 미국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를 묵인하는 '구두 합의'를 했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용인하는 대가였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훗날 미국 27대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 미 육군장관이 가쓰라 타로(桂太郞) 일본 수상과 담판을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을사조약과 경술국치 등 우리에게 뼈 아픈 일제강점의 역사가 이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몸무게가 175kg에 달해 미국 역사상 가장 무거웠던 대통령으로도 유명한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전 대통령의 '후계자 지명' 덕에 대통령이 됐다. 루즈벨트의 오른팔이었던 태프트는 루즈벨트의 대통령 재임 중 그에게 절대 충성하며 신임을 쌓았다. 이 덕분에 루즈벨트의 추천을 받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고, 1908년 대선에서도 루즈벨트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태프트는 루즈벨트로부터 등을 돌린다.
1951년 초 존 에프 케네디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듬해 치러질 주지사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 중 어디에 출마할 지 선택해야 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대통령을 꿈꾸는 이 야심찬 젊은 정치인은 보좌관에게 자신의 결심을 이렇게 알렸다. "주지사 사무실에 앉아 하수관 공사 계약이나 다루고 싶진 않아"라고.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당선된 케네디는 그의 판단대로 1961년 35대 대통령이 됐지만 현직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된 것은 29대 워런 하딩 이후 케네디가 겨우 두 번째였다. 케네디 이후에도 47년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단 한 사람이었던 데 비해 주지사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건 9명이다. 숫자 상으로는 전직이 부통령(13명)인 경우가 더 많지만 전임 대통령의 사망이나 하야에 따른 승계를 제외하면(4명) 주지사에 미치지 못한다. '하수관 공사 지휘'가 대통령 당선에 꽤 유리한 경력이 된 셈이다. 미국 정치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역대 미 대선 후보의 지위에 따른 선거 영향을
전영록의 모친 백설희가 부르고 한영애 심수봉 조용필 장사익까지 리메이크했던 '봄날은 간다'는 올봄 여의도 최고 화제곡이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권의 위기감이 깊어가던 4월초 정두언 새누리당의원이 쇄신파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먼저 목청 높여 한가락을 뽑았다. 이대로 가면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정치권 격언이 그대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한달 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회의에서 '정청래 공갈발언'으로 싸움판이 벌어진 상태에서 울려 퍼진 '봄날~'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봄날은 간다'는 원래는 지키지 않을 약속만 던지고 떠나간 못된 남자 놈에 대한 회한을 담은 '연애가'이지만, 뜨거운 여름이 온 걸 모르고 있다간 진땀쏟고 탈진할 지경에 이를 거라는 '계송'으로 더 제격이다. 가 버린 봄날을 아쉬워해야 하는, 그래서 빨리 계절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부친을 통해 '정치
최근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의문 한 가지가 풀렸다.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 중 하나가 의회주의자로서의 면모였다고 말하곤 했다. 의회민주주의 개념조차 있는 지 없는 지 모를 우리나라에서 '의회주의자 박근혜'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말이지만 이번에 논란이 된 국회법 개정안보다 시행령 개정을 더 강하게 강제하는 법안을 공동발의했었다니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고 보면 박 대통령은 20년 넘게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국회의원 당선보다 낙선이 경력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타이틀이 훨씬 잘 어울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할 바가 안된다. 박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내세울 때도 팔 할은 의회가 명분이 됐다. 2000년 국민의 정부 시절 자유민주연합을 교섭단체로 인정하는 것에 반발해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가 장외 투쟁을 이끌자 국회정상화를 주장하며 반기를 들었던 그다. 오늘날의 박 대통령이 있게끔한 세종시특별법은 어떤가.
"연간 6만명 외국인 환자 유치로 1116억원 진료수입이 기대됩니다." 새누리당의 2014년 홍보물 일부다. 이 홍보물 앞면은 그해 처리한 입법성과를, 뒷면은 2015년에 추진할 남은 과제를 담았다. 추진과제의 하나인 의료법 카테고리에 '국내보험사 외국인환자 유치'가 있다. 새누리당은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게 되면 1000억 넘는 진료수입이 생길 걸로 봤다. 이 홍보물 의료법 영역엔 '외국어 의료광고 허용'과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도입'도 있다. 새누리당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나라 의료에 대한 홍보를 확대하고 외국인환자 유치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어 의료광고 허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모두 박근혜정부의 중점 추진정책이고 '민생경제법안'으로 규정됐다. 원격의료는 '민생'으로 볼 여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원격진료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8일 발언은 일리가 있다. 원격의료가 의료
"난 점심 먹을 때 절대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 낮잠을 못 자고 오후 내내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항상 낮잠을 잤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아침에 썩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일찍 깨우면 불평을 했다. 참모가 "내일 아침 7시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부가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하자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그 친구,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겠군." 그는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할 때 이미 우리 나이로 71세였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었다. 나이 탓에 기력이 쇠해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레이건 전 대통령이 늦잠에 낮잠까지 잔 게 꼭 나이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는 주로 밤에 '정치'를 했다. 당시 소련과의 냉전을 끝내기 위해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고, 경기회복을 위해 감세법안을 통과시키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