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쪽에선 재판권 독립을 위해 밤잠까지 설쳐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또 다른 편에선 자제를 촉구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법원에 근무하는 A판사는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있는 사법연수원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촛불재판 개입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반발 수위를 낮춰 달라"는 취지의 전화였다.
황당하고 슬픈 마음에 이곳저곳을 수소문해보니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은 판사는 자신만이 아니었다.
신 대법관 재판개입 파문과 관련해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은 물론 정치권에까지 자제를 촉구하는 '일제전화'를 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법부 수뇌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소장 판사들은 일제전화 직후 대법원의 행위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고 대법원은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자 전화기를 내려놓고 진화에 나섰다.
대법원은 신 대법관 사태가 '사법파동'으로 번질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권까지 가세해 자신들도 대법원으로부터 부적절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며 사법부를 맹비난하고 나서면서 대법원의 변명은 궁색하게 됐다.
대법원이 얼마나 급했으면 이런 민감한 시기에 경솔한(?) 행동을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사법부의 최고 상급기관으로서 '집안싸움'을 그냥 두고만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도 전화의 주체가 사법부의 심장격인 대법원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화파문은 납득하기 어렵고 일선 판사들의 실망도 더 크다.
대법원은 신 대법관 사태의 본질이 특정 법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판사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재판권'이 걸린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 판사들이 고된 일과에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판사회의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사법부 수뇌부는 지금이라도 선배 된 입장에서 포용력을 발휘해 이런 후배들의 고층과 고민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판사들이 '왜 신 대법관 사태에 격노하고 있는지', 속된 말로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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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후배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펼칠 때 비로소 신 대법관 사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의 신중한 처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