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지 못할 경험담 하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실과 시험 문제로 기억한다. 옷을 입는 순서를 묻는 객관식 문제 때문에 시험후 논란이 일었다. 논란의 핵심은 팬티부터 입느냐, 런닝부터 입느냐였는데 정답은 '런닝부터 입는다'였다. 일상에서 대부분 팬티부터 입던 친구들은 당연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옷을 입는데 팬티부터 입으면 어떻고 런닝부터 입으면 어떠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최근에는 타이트하게 옷을 입는 게 건강에 좋지 않다며 집에서는 '노팬티'로 지낼 것을 의사가 직접 권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대와 상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학교와 교과서에는 잘 반영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크게 작용한다.
한국 교사들의 최대 이익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최근 '미래형 교육과정'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래형 교육과정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지난 7월 말 제시한 교육과정 개편 구상안을 이른다. 학생들의 지나친 수업부담 완화를 위해 학기당 이수 과목수를 현행 13과목에서 8과목 이하로 줄이는 것이 핵심 내용이며 올 연말까지 확정안이 나올 예정이다.
교총은 이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교과군·학년군이 도입되고 수업시간이 적은 과목을 집중 이수하게 하면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 저해와 학습권 침해, 교사들의 전문성 저하 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마디로 지금처럼 계속 한 학기에 13과목씩 수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교육공급자 중심의 발상이다.
융·복합이 화두인 시대에 도덕과 사회가 사회·도덕으로, 과학과 실과가 과학·실과로, 음악과 미술이 예술로 통합된다고 해서 정말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이 저해될까. 미래형 교육과정이 절차상 문제가 있고 국영수 집중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일만 하다고 본다. 그러나 전인적 성장, 학습권 침해 운운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한국 교육개혁의 씨앗이 되겠다며 자식같은 회사까지 팔아치우고 나온 이찬승 전 능률교육 대표는 최근 본지 기고글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한국의 학교를 꼽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아직도 많은 학교가 별로 쓸모 없는 것들만 가르치고 있다는 탄식이었다.
교사들이, 또 교수들이 자신의 '밥그릇'보다 아이의 행복이나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사고의 중심에 두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