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 살해 누명쓰고, 간암으로 세상떠"

"개구리소년 살해 누명쓰고, 간암으로 세상떠"

김예현 기자
2011.02.23 14:50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인터뷰①

↑이명근 기자 qwe123@ 전미찾모에서 만난 개구리소년 아버지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남환, 우종우, 김현도, 박건서 씨)
↑이명근 기자 qwe123@ 전미찾모에서 만난 개구리소년 아버지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남환, 우종우, 김현도, 박건서 씨)

"아이고, 아버지는 무슨. 이제 할아버지제..."

최고연장자 김현도(영규군 아버지, 65세) 씨는 성하지 않은 걸음을 절뚝거리며 "그냥 할아버지라 부르라"고 말했다.

사건 발생 후 21년, 22일 저녁 서울 청량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사무실에서 만난 개구리소년의 아버지들은 어느새 세월에 깊게 패인 주름에 백발 무성한 모습이었다. 이 자리에는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도 함께했다.

"부모의 도리 저승에서 다하겠다는 유언남겨"

인터뷰는 영화 속 '종호 아버지' 고(故) 김철규 씨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진행됐다.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 전미찾모 사무실에 모인 개구리소년 아버지들(왼쪽부터 박건서, 김현도, 조남환, 우종우 씨)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 전미찾모 사무실에 모인 개구리소년 아버지들(왼쪽부터 박건서, 김현도, 조남환, 우종우 씨)

우종우(철원군 아버지, 62세)씨는 "영화의 모델인 김철규(종식군 아버지)씨는 실제 한 범죄심리학 교수의 잘못된 추리로 누명을 쓰고 평생을 눈물과 한탄으로 지새우다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세상을 뜨기 전에 "이승에서 못 다한 부모의 도리를 저승에서 다하겠다. 먼저 종식이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씨는 "그 유언 때문인지 다음해 유골이 발견됐을 때도 우리는 '오죽 고통이 심했으면 그 원한으로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냈나' 싶더라"고 말했다.

김씨의 집이 파헤쳐졌을 당시 다른 아버지들은 김씨가 혐의를 벗을 수 있도록 제대로 하라고 오히려 부추겼다고 한다.

우씨는 "처음엔 그 교수의 오판이라며 못 파게 했지만 그 교수는 두 세 번씩 우리 부모들을 찾아와 심증을 굳힌 것 같더라.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아 차라리 파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에서 모임을 가진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에서 모임을 가진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아버지들에 의하면 개구리소년 살해범을 김씨라고 지목했던 전 카이스트 물리심리학 교수 김모씨는 영화에서처럼 집에서 사체가 나오지 않자 급히 도망가다 잡히고,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유골이 발굴된 뒤, 김 전 교수는 김씨 집을 찾아가 사과를 했다. 하지만 네 아버지들은 "말로는 부족하지 않나. 한 가정을 모두 파괴하고, 거기에 고통 받은 종식이 아버지는 암까지 생겨 돌아갔는데...남은 부모에게까지 오명을 씌웠다"고 설움을 토로했다.

전미찾모 회장 나주봉 씨도 "김 전 교수는 영화 시사회 전날 개구리소년 아버지들을 만나보겠냐는 제안에 당일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승낙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말도 없이 가버렸더라"며 "김씨는 단순한 사과의 말이 아닌 진심으로 아이들 아버지에게 속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에서 모임을 가진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에서 모임을 가진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우씨는 "종식이 아버지가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고, 술도 잘 안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간경화 판정을 받았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식당에서 갑자기 배를 보여주더라"며 "그 땐 우리도 믿지 않았는데 나중에 병문안을 가니 체격 건장하던 사람이 야위어서 소파에도 겨우 올라가더라"고 김씨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인터뷰②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 전미찾모에 모인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이명근 기자 qwe123@ 청량리 전미찾모에 모인 개구리소년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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