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 아버지들 인터뷰②
◇"3년6개월 동안 생업도 그만두고 전국 돌아다녀..."

김현도씨는 "사실 아버지들이 3년 6개월 동안 생업도 포기하고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찾던 과정이 잘 묘사되지 않아 섭섭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초동수사 때 경찰에서 사건브리핑을 할 때마다 아이들이 ‘앵벌이’로 잡혀갔다고 주장했다"며 "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을 만난 뒤로는 3년 6개월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돌리고, 아이들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우종우씨는 "그 때 전국 경찰서마다 개구리소년 사건의 전담반이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편 아버지들은 영화 속 부모들이 방송과 전단지 배포로도 모자라 무속인의 말대로 쓰레기차를 뒤지던 장면이 ‘실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서울의 한 아주머니가 신내림을 받고 대구에 있는 개구리소년 아버지들을 당장 데려오라고 하더라. 애들이 나주의 한 지하실에 갇혀 있다고...그래서 부랴부랴 형사 6명을 대동해 트럭을 타고 갔다. 그런데 갑자기 광주에서 그 아주머니가 옆에 지나가던 쓰레기차 안에 있다고 지목하는 바람에 쓰레기차를 전부 뒤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씨는 "기자, 무속인, PD, 경찰 할 것 없이 우리 동네에 찾아오고...말도 못한다. 거짓제보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보자를 찾았다"며 "우리에게 그건 고통이 아닌 ‘희망’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했다.
◇"경찰의 미흡한 수사는 지금도 한으로 남아..."

당시 경찰 수사에 대해 우씨는 "영화와 달리 처음 유골이 발견됐을 때는 법의학자가 발굴하기도 전에 경찰이 먼저 마음대로 파헤쳐버렸다"고 말했고, 이에 김 씨는 "경찰의 미흡한 수사방법은 두고두고 한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1차 경찰 발표 때는 아이들이 저체온증으로 동사했다고 했다. 그런데 여간 의심스러운 게 아니어서 경북대 한 법의학자에게 사인 재규명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 타살로 판명나 처음에는 사체가 썩고 뼈만 남았을 때 유골을 이동시켜 파묻었을 거라고 하던 법의학자가 갑자기 말을 바꿔 '원래부터 그 자리에 묻혀 있었다'고 했다"며 "분명히 3월 26일 아이들이 사라진 그날 살해됐다고 하는 걸 들었었는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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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개구리소년들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은 30살 정도로 어엿한 사회인이 돼있었을 것. 김 씨는 "찬인 아버지(박건서 씨) 빼놓고 전부 두 자녀를 뒀다가 아들 한 명씩을 잃었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누나를 가진 아이도 있었고, 남동생이 있는 아이도 있었다.
박건서 씨는 당시 외동이었던 찬인군을 잃은 슬픔이 되살아났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만 붉혔다. 박씨는 찬인군의 실종뒤 아들을 하나 더 낳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