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전 규모 분출땐 남한면적 7배 피해 "복구 불가능"

백두산 화산연구를 위한 남북 전문가협의가 29일 오전 10시부터 경기 문산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열렸다. 백두산 화산폭발로 인한 북한붕괴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발해가 백두산 화산폭발에 의해 멸망한 것이라는 주장도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거란을 세운 요나라의 역사서 '요사(遼史)' 중 "거란 태조는 (발해의) 갈린 마음을 틈타 군사를 움직이니 싸우지 않고 이겼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발해 지배계급의 내분에 의한 국력약화로 발해가 멸망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백두산 화산폭발이 민심 이탈의 이유이며, 심지어 발해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시기와 규모에 대한 설명은 제각각이지만 10세기를 전후해 있었던 백두산 화산폭발은 지난 2010년 4월 일어난 유럽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의 1000~1500배에 가까울 만큼 엄청났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대학교 마치다 히로시 교수는 1990년 '백두산 화산폭발과 그 환경적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발해 멸망이 백두산 화산 폭발과 관련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일본 홋카이도 토양층에서 발견된 화산재층은 915~1334년에 백두산에서 날아와 쌓인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발해가 멸망한 926년과 비슷한 시기라는 설명이다.
2006년 부산경남방송 KNN은 특집다큐 '발해-백두산에 묻힌 멸망의 진실'을 통해 이 주장을 다시 제기하기도 했다. 10세기 백두산 분화로 북반구의 기온 약 0.85도 하락해 6년간 지속됐고, 백두산 부근은 월평균 2.25도가 하락하는 바람에 발해의 주요 산물이던 쌀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 학자들이 백두산 일대와 일본 홋카이도 지방의 화산재 연대를 측정한 결과 백두산 화산폭발은 929~945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926년 이후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멸망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중국 국가지진국은 지난 1999년부터 백두산 천지온천 북쪽에 천지화산관측소를 설립해 분출에 대비하고 있다. 이 관측소와 국내외 연구진들이 예측한 백두산 폭발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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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1000년 전 규모로 분출할 경우 6cm이상의 화산탄은 건물의 지붕과 벽을 관통하고, 화산재가 10~15cm 두께로 쌓이며 건물지붕이 무너진다고 한다. 농작물은 화산재에 1cm만 덮여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마그마에 포함된 다량의 불소는 사람과 가축을 질식시킨다.
또 중국과 북한, 일본 북부 등에서 남한 면적의 7배인 70만㎦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뿐 아니라, 20억 톤의 물이 고여 있는 천지로 인해 백두산 일대에 큰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지난 해 12월 대북매체 데일리NK는 백두산 폭발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북한 당국의 대처방안이 준비돼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백두산폭발이 발생할 경우 북한은 "복구 불가능"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함경북도 인구가 210만명, 함경남도 310만명, 양강도 70만명 수준으로 이 중 노약자, 아동 등 인구 10%수준인 50~60만명의 인명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또 물, 식량, 전기 등이 끊기며 난민이 된 이 지역 주민들이 대량탈북을 해올 가능성도 제기했다.
특히 함경북도에 집중된 군수공장과 김책제철소, 5·10연합기업소, 청진조선소, 룡성기계련합기업소 등의 피해도 막심할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