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잠자리를 제공하는 보호센터와 쉼터들은 바빠졌다. 노숙인들은 하루 잠자리를 구하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센터'를 찾았다. 시민들은 급작스러운 추위에 전자상가를 찾아 전기장판 등 난방기기를 구하기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다.
21일 서울 갈월동에 위치한 성공회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에는 일자리와 진료상담 뿐만 아니라 하루 잠자리를 구하려는 노숙인들로 분주했다.
센터 이형운 팀장은 "하루벌이로 살아가는 노숙인들에게 겨울 추위는 그나마 있는 일거리마저도 끊기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노숙인 대다수가 단순노무 위주의 일용직 건설 노동에 종사하는 탓에 현장 일감이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노숙인들의 '체감'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2009년 시멘트업계와 건설업계 갈등으로 빚어진 일명 '시멘트파동' 당시 상황은 건설경기와 노숙인 호주머니 사정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시멘트파동'으로 건설현장이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워지자 일감이 줄어들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면서 노숙인 수가 단기간에 증가했었다.
이 팀장은 "특히 날씨가 추워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 특히 '초기' 노숙인 숫자가 증가한다"며 "서울역 인근을 기준으로 일주일에 10명 정도 보이는 초기 노숙인 수가 서너배까지 늘어난다"고 전했다. 추위가 시작되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숙인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는 의료지원, 직업 관련 상담 등 노숙인 자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최근에는 최대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일일 잠자리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센터 관계자는 "지난겨울 추운 날씨로 노숙인들이 지내는 공간에 난방비가 많이 나와 적은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의류와 담요 같은 물품과 난방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 39곳 쉼터와 5개 상담보호센터를 지원·운영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시는 겨울철 특별거리상담반을 운영하는 등 '겨울철 노숙인 특별보호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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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자상가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날 전자상가와 아이파크 백화점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장판과 전기요, 전기매트 등 의료기 및 난방기기를 구매하거나 두터운 점퍼 등 방한복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이 눈에 띄였다.
남편과 함께 용산 전자상가를 찾은 나온 주부 장현정씨(43·한강로2가)는 "어머니께 선물로 드릴 전기장판을 사러 나왔다"며 "본격적으로 날씨가 추워질 것 같아서 마음 먹은 김에 구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치냉장고와 비데 등 중·대형 가전제품 매장에도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어머니와 함께 김치냉장고를 사러 나온 이승희씨(42·이촌동)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지 얼마 안되서 김치냉장고를 처음 구입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난방기기 제품 수요도 늘어난다'라는 공식은 이미 통용되지 않은지 오래라는 입장이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전기요와 전기매트, 비데 등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김성식씨(50·가명)는 "예년에 비해 가을이 길어지면서 재미를 못보고 있다"며 "이미 지난달 초에 난방기기 구입할 사람들은 다 구매해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겨울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게 비데"라며 "요즘엔 주택에 사는 사람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난방기기를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패딩이나 점퍼 같은 방한복 수요도 지난달 초에 '반짝'했다가 이달 둘째주부터 그나마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 용산 아이파크점에 입점한 남성용 스포츠웨어 샵매니저인 임태수씨(33)는 "10월 초에서 중순때 잠깐 많이 팔리고 이후 재고가 쌓였다가 지금은 없어서 못판다"며 "지난 14일부터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했지만 12월초가 되면 방한복 수요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백화점이나 대형상가와는 달리 서민들이 즐겨찾는 남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남대문시장에서 22년째 음식장사를 하고 있는 서형준씨(55)는 "무엇보다 난방비가 걱정"이라며 "난방비를 아끼려고 냉온기를 틀고 있는데 앞으로 더 추워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용실이나 이발소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올 겨울 난방비가 가장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용산구 청파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선령씨(가명·48)는 "우리 같은 서비스업은 겨울철에 무엇보다 가게가 따뜻해야 한다"며 "지금은 전기난로를 틀고 있는데 날씨가 더 추워지면 석유난로를 피워야 한다. 가게가 10평 남짓인데 석유난로를 사용하면 하루에 등유 20리터(ℓ), 돈으로 따지면 2만원에서 2만5000원정도가 들어 장사가 잘 안되는 날은 남는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지하철역에서 숨진 채 발견된 노숙인을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립중앙의료원을 직접 찾으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상태. 사건 이후 서울시청과 코레일이 노숙인 대책과 관련해 마찰이 생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노숙인들이 더욱 소외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지난 8월16일부터 새벽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서울역 내에 머무르는 노숙인들을 퇴거키로 했다. 이에 박 시장이 퇴거 조치를 재고해달라고 코레일 측에 요청해 노숙인만 더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서울시 관계자는 “퇴거 조치 재고에 대해 서울시가 공식적인 요청을 한 적도 없고 전임 시장부터 해오던 대로 노숙인에 대한 대책은 계속 이어진 것”이라며 “코레일과 협조 하에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도 이날 “노숙인을 퇴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노숙인을 위한 조치”라면서 “철도안전법 규정에 의거한 것일 뿐 아니라 늦은 밤 노숙인의 서울역 내 출입은 오히려 노숙생활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레일 관계자는 “노숙인을 무차별적으로 내쫓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나 보건복지부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노숙인을 위한 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부지도 무상임대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역 노숙인들을 자주 접하는 인근 경찰관들은 “아직 추운 날씨 때문에 노숙인들에게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경찰 관계자는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할 보호시설은 주변에 충분히 있다"면서 "다만 보호시설의 규제를 노숙인들이 견디지 못해 다시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귀띔했다.
다른 경찰관도 "노숙인 시설만 무작정 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