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 모임이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려다 구청의 제지를 받으면서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마포구 지역 성소수자 모임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마레연)'는 지난달 서교동과 합정동, 창전동 등 3곳에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현수막을 게시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현수막 제작에 참여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는 "지난해에는 버스 내부에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를 게재한 데 이어, 올해는 외부에 현수막을 걸어 전체 구민들과 성소수자 문제를 얘기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곧 소셜펀딩 방식으로 현수막 제작 및 게시 비용 100여만원이 모금됐다.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머리글자),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지금 이 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라는 문구의 시안도 마련했다.

"미풍양속 훼손" vs "성소수자 혐오"
그러나 게시 예정일(5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현수막 제작업체는 "마포구청 내부 검토 결과 4일까지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광고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 대표는 "구청 담당 공무원은 현수막 내용 중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짚어내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라는 말만 수 차례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마레연 회원 '오김(활동명)'씨는 "'첫 번째 현수막 시안 속 사람 그림이 상의를 벗고 있는 것처럼 보여 청소년에 유해할 수 있다', '(현수막 내용 때문에) 민원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그림과 문구를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실이 SNS에 알려지면서 네티즌 항의가 이어지자, 마포구청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마레연의 현수막이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5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 보호ㆍ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마포구청은 "광고물팀 내부 검토 결과 (마레연에) 내용 보정 및 순화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독자들의 PICK!
마포구청 담당 공무원은 5일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지난 5월 이모씨가 서울시내 11개 자치구에 성소수자에 관한 현수막 게재를 요청했을 때, 마포구는 협의 끝에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서울시민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입니다. 모든 국민은 성적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습니다'라는 문구로 게재를 허용했다"며 "마포구가 성소수자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공무원은 "현수막 문구 중 '열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라는 표현이 과장된 측면이 있고, 상반신을 탈의한 듯한 그림이 청소년들이 보기에 안 좋을 수 있어 전체적인 문안을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순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라며 "게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관청에서 관리하는 공공게시물인만큼 다양한 시각을 감안해 내부 검토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전했다.
마포구청은 오는 10일 열리는 광고물 관리 및 디자인 심의위원회에서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수막 내용 수정 여부를 다시 협의할 예정이다.
한편 마레연 측은 구청의 현수막 수정 요구를 전면 거부한 채 질의서 및 항의서한 전달, 구청장 사과 요구 등의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성소수자 혐오는 성소수자가 우리 곁에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이 있다. 이번 현수막 수정 요구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라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