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객관적 위험 불구 "설마 동양그룹이 망하겠느냐"···'인지적 부조화'

최근 한 후배가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 출장을 다녀왔다. 일본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관심이 컸던 터여서 현지 분위기를 물어봤다. 후배의 답은 이랬다. "일본 사람들은 아무도 수산물 방사능 오염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쓰던데요. 신경 쓰는 사람은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들 뿐이었어요"
실제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시장에서 수산물을 사거나 식당에서 생선을 먹으면서도 방사능 오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방사능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방사능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스스로 불안해지고 일상 생활이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잊고 사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인지적 부조화'란 사람이 자신의 신념이나 태도와 상충되는 현실적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겪는 심리적 불안정을 뜻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신념이나 태도를 바꾸는 길을 택한다. '방사능은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일본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이런 '인지적 부조화'가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다.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동양그룹 사태'가 이에 해당한다.
동양그룹이 재무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1년 전부터 금융시장에 퍼져 있었다. 동양그룹 기업어음(CP)의 수익률이 연 7% 이상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동양증권 직원들은 무려 5만명의 고객들을 상대로 1조5000억원 규모의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팔아치웠다. 동양그룹의 기습적인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들은 평균 5000만원의 피해를 떠안게 됐다.
그렇다면 동양증권들은 왜 이런 '독약'과 같은 금융상품들을 자신의 고객들에게 떠넘긴 것일까?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동양증권의 대부분 직원들이 "설마 동양그룹이 망하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고객들에게 동양그룹 채권을 넣은 특정금전신탁 등을 추천했다. 상부로부터 공격적인 마케팅 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처음에는 "위험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현실적 압력에 따른 '인지적 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신념과 태도를 바꾸는 길을 택했다.
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면 고객이 투자를 거부할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설명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는 '불완전 판매'까지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동양증권 직원들이 '공범'(?)의 멍에를 덮어썼다.
상부에서 부당한 지시를 내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지적 부조화'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고도의 자기 기만'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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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요 경영대학원들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도 이런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다룬다. 하버드대 MBA에서는 이런 경우 그냥 '사표'를 던지라고 가르친다. 컬럼비아대 MBA에서는 끝까지 상관에 맞서 싸우라고 한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론 '일자리'와 '양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월급쟁이'들의 현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