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한다고? 그래도 바뀌는 건 없다"

"장애등급제 폐지한다고? 그래도 바뀌는 건 없다"

이슈팀 문해인 기자
2014.03.31 06:02

# 서울 성동구에 사는 성모씨(47·남)는 23세 때 사고로 뇌출혈을 당해 좌뇌를 다쳤다. 이 충격으로 "응" 정도 밖에는 말하지 못하는 언어장애를 갖게 됐고 오른쪽 손과 다리가 불편해졌다. 혼자서 밥을 지어 먹을 수도, 목욕을 할 수도 없다. 거동도 불편해 다른 사람들이 걸어서 25분에 가는 거리를 걷는 데 3시간이 걸린다. 의사는 휠체어를 타라고 권했지만 가족이 없어 밀어줄 사람도 없다. 활동보조인을 지원 받기 위해 주민센터와 구청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장애등급 3급이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뿐이었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의 주된 원인으로 장애인들 사이에 지목돼왔다. 1급부터 6급 가운데 몇급으로 판정 받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정해진다.

성씨와 같은 3급 장애인은 활동보조인 지원을 아예 신청할 수도 없고 장애인 콜택시조차 이용할 수 없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한다"는 점 때문에 장애인 단체들은 오랫동안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해왔다.

논란 끝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28일 열린 '제1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오는 2016년부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종합판정도구를 새로 개발해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활동보조인 신청자격은 3급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장애인 단체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2012년 8월부터 585일째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농성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남병준 정책실장은 28일 "지금도 2급까지 활동보조인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기준이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사람은 매우 적다"며 "3급이 아니라 6급까지 신청자격을 완화해도 실제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활동보조인 지원혜택을 받은 장애인은 5만8000여명이었다. 2010년 복지부 조사 결과, 활동보조인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 35만여명이었음에 비춰 턱없이 적은 숫자다. 심지어 정부가 정해진 예산조차 쓰지 않는 바람에 2012년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인 예산 2972억원 가운데 944억원이 남기도 했다.

남 실장은 "장애등급제가 아니라 종합판정체계도 장애인을 줄 세우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지원 규모 자체를 늘리고, 장애인 개개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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