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8일째]국민적 '죄책감' 조문열기로…집단적 '트라우마' 심각

'애기들아 미안하다 우리 어른들 잘못이다',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한 이 나라 어른들을 절대 용서하지 마라', '우리 어른들이 너무 부끄럽구나', '꽃 같은 우리 아이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세월호 참사 8일째인 23일, 안산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 임시 합동분향소의 추모게시판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띄우는 '사죄'의 메시지로 가득 찼다. 이번 사고가 철저한 인재(人災)로 드러나면서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데 대한 죄책감과 안타까움이 온 나라를 깊은 슬픔에 빠뜨리고 있다.
국민적 죄책감은 조문열기로 이어졌다. 이날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47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된 합동분향소는 거대한 울음바다였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조문행렬은 이내 체육관 앞 인도까지 길게 늘어졌다. 4열 행렬은 저녁 퇴근시간 이후 몰려드는 조문객에 두 배로 늘었다. 오후 8시 현재 8140명의 시민이 전국에서 모여 내 일처럼 목 놓아 울며 넋을 기렸다.

당고개에서 온 김정옥씨(50·여)는 "밥이 맛있는 것조차도 미안하다. 눈뜨면 눈물이 계속 나서 울다 자다 울다 자다 병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 갔으니 사고나도 밖에서 구출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수원에서 온 대학생 이성호씨(23)는 "저희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잘못 아닌가, 내 무관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특히 이웃 학생들 수백 명을 차디 찬 바다에 떠나보낸 안산시는 집단적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역 사찰과 교회 등 종교단체, 동호회, 학생들의 단체 조문이 줄을 이었다.
안산시 보문선원 연합합창단 소속 박모씨(65·여)는 "자식 키우는 사람들 마음이 똑같지 않겠느냐"며 "안산시 전부가 집안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안산 단원구 초지동에 사는 주부 정모씨(55·여)는 분향소 건물 앞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정씨의 조카 친구가 이번 사고로 실종됐고, 남편 직장 동료 2명도 자녀를 잃었다. 정씨는 "몇날 며칠 밥도 못 먹고 멍하니 뉴스만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왔는데 막상 마음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정씨는 "내 동네에서 이러니 내가 사고를 당한 것 같고 우리 애들이 저러면 어떨까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를 당한 애들 부모들이 시화·반월공단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데 지금 다 일손 놓고 진도에 내려가 있어 일터도 쑥대밭"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부 조문객들은 긴 시간을 통곡하다 탈진으로 쓰러지거나 주저앉아 고통을 호소했다. 분향소에는 적십자사와 경기도 자원봉사단이 분향소에 상주하며 이들을 돕고 있다. 또 체육관 앞에는 안산·경기지역 의·약사 봉사단으로 구성된 경기도·안산시 의료지원센터가 꾸려져 조문객과 유가족들에게 심리치료와 의약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센터에서 봉사 중인 김희식(54·여) 약사는 "안산은 도시 전체가 초상집"이라며 "특히 이번 사고로 친구를 잃은 어린 학생들은 잠을 못 자거나 밥을 못 먹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지원센터 측은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부모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이번 참사를 내 일처럼 느끼고 쉽게 공감하고 아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슬픔이 사회적 신드롬, 우울증으로 발전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