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가 중독성 알고 공급 vs 건보공단은 소송주체 안돼, 불법성·소송타당성 집중공방
"담배에는 69종류의 발암물질과 4000종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지만 담배회사들은 단순 기호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담배가 중독성 있는 약물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중독성을 더 강화해 담배를 공급해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 소송 대리인 정미화 변호사)
"건강보험공단은 담배로 직접 손해 본 것이 없기 때문에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가 있다면 피해를 입은 개개인이 손해를 입증해야 한다. 흡연을 계속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다." (KT&G·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 측 소송대리인)
1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466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4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537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첫 변론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이 열린 466호 법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도 가장 큰 민사법정이다. 당초 30석 규모의 작은 법정이 배정됐지만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해 이 법정으로 변경됐다. 법정에 마련된 180개 좌석은 일찌감치 빈자리가 없었다.
재판은 건보공단의 변호인이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소송의 근거와 취지를 설명하고 피고인 KT&G·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가 여기에 답변하면 공단이 다시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건보공단 측 정미화 변호사는 "담배가 기호품인지, 허락되지 않은 위험품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며 포문을 열였다. 그는 "미국에서도 담배회사들은 중독성이 강화되고 니코틴 흡수를 극대화하도록 의도적으로 담배를 설계했다고 고지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인정되는 것이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같은 공단 측 주장에 피고들은 건보공단이 소송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필립모리스의 소송대리인인 이혜광 변호사(김&장)는 "공단에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는지에 대해 법률적 쟁점을 중심으로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김성욱 변호사(김&장)도 "건보공단은 직접 담배회사에 대해 제조물책임이나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건보공단의 보험급여 지급은 법률상 배상대상인 손해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건보공단 청구는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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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대법원은 공단이 제3자의 불법행위를 통해 치료비를 추가로 지출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도록 인정하고 있다"며 맞받았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폐암사망자 유족 등이 국가와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담배회사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담배 회사 측 소송대리인들은 "대법원 판결로 담배회사의 제조물 책임 등 위법성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대법원 판결은 2011년 이전 사실에 기초한 판단이지만 건보공단은 최신 결과를 가지고 소를 제기했다"며 대법원 판단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변론을 들은 박형준 부장판사는 "건보공단의 직접손해 청구 가능 여부, 흡연과 폐암 간 인과관계 증명방법, 제조물 책임유무, 불법행위 책임유무, 손해액의 범위 등이 쟁점"이라며 "직접 손해 여부를 먼저 심리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변론은 11월7일 오후 2시 동일 법정에서 진행된다.
소송을 참관한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최근 담뱃값 인상을 통해 담배가 유해물질임을 정부도 확인했다"며 "소송을 통해 담배의 유해성을 증명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