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바다에 간 가족들 "미안하다"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바다에 간 가족들 "미안하다"

진도(전남)=김유진 기자
2015.04.15 23:32

[세월호 1주기]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 세월호 침몰 지점을 찾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현장을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 세월호 침몰 지점을 찾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현장을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바다는 엷은 옥색을 띄고 있었다. 파도는 잔잔했다. 높이 뜬 태양은 구름 없는 하늘에서 따뜻하게 세상을 비췄다.

부모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사고해역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이날 오후 2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실종자의 빠른 수색을 기원하는 위령제가 끝난 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200여명은 배를 타고 세월호 참사 현장으로 갔다.

10살 꼬마부터 시작해서 80대 노인까지 형제와 자식, 손주를 잃은 희생자 가족들은 차분한 분위기로 담소를 나누며 배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들은 배 갑판에 나가 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유일한 실종자 가족으로서 이날 오후 배에 오른 양승진 선생님의 부인 유백형씨(54)는 남편에게 줄 선물인 꽃다발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노란 국화와 분홍색 장미가 어우러진 예쁜 꽃다발이었다.

유씨는 "지난달 24일이 우리 남편 생일이었거든. 남편 생일선물이야"라고 말했다. 남편 생일이면 '오래 살라'는 의미로 잡채를 꼭 했었다. 올해는 먹을 사람이 없어 바다에 뿌렸다.

지난해 11월11일 선체 수색이 종료된 뒤 실종자 가족들과 한 차례 사고해역을 방문한 뒤로 이번이 처음이다. 유씨는 "이미 가족을 찾은 유가족들이 부럽고 그래. 아무래도 내 마음과 그 사람들 마음은 다르니까"라며 말을 줄였다.

팽목항에서 배가 출발한 지 1시간30분쯤 지난 오후5시쯤. '사고해역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객실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나와 배 난간을 붙잡고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몇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울음 섞인 이름들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철민아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선생님들이랑 친구들이랑 거기서 행복해야 해", "엄마는 정말 억울해서 못 살겠어" 바다에는 국화꽃이 던져졌다.

'세월'이라고 쓰인 부표를 향한 수많은 가족들의 외침 속에서 가장 많이 들려온 말은 "미안하다" 였다.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부모들은 난간에 매달려 울며 자식에게 용서를 빌었다.

형제자매를 잃은 아이들도 그렇게 미안하다고 했다. 단원고 2학년6반 고(故) 김동영군의 여동생 김채영양(16)은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살아있을 때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김양은 오빠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 후 1년이 지나고 달력에 다시 '4'라는 숫자가 돌아오고 나서 그때의 기억이 갑자기 몰아쳤다. 김양은 "사고가 난 4월 접어들면서 열흘 정도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1남3녀 가정, 귀한 막둥이 남동생을 잃은 누나들도 동생에게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원고 2학년7반 고(故) 서현섭군의 셋째누나 서아름양(22)은 "착하고 공부도 잘 했던 우리 남동생, 미안하고 보고싶다"라며 언니와 함께 난간에 나란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봤다.

20여분을 사고지점에서 맴돌던 배는 "빠앙-" 하고 뱃고동 세 번을 울리더니 방향을 틀었다. 배는 노을을 등지고 다시 팽목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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