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남혐은 일종의 파시즘 현상"…극단 치닫는 '집단극화 현상' 경계해야


최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남녀 성대결로 치닫고 있다.
온라인에선 물론 추모 현장인 강남역 10번 출구에선 남성 혐오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이 잇따라 붙고, 일부 남성은 이 포스트잇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쌓여온 '여혐'(여성에 대한 혐오) 혹은 '남혐'(남성에 대한 혐오)에 대한 분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모양새다.
◇된장녀로 시작된 이성 혐오, 10년 뒤 한남충으로 돌아와
2006년 야후코리아가 실시한 인터넷 신조어와 유행어 조사에서 1위에 오른 단어는 '된장녀'였다. 당시만 해도 된장녀는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서도 한끼 밥값과 맞먹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여자를 비하하는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된장녀는 김치녀와 함께 한국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2010년에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라는 커뮤니티가 생기면서 '김여사' '맘충' 등의 단어가 등장했고 '여성은 곧 무개념'이라는 혐오감을 본격적이고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물밑에 있던 남성 혐오가 떠오른 건 지난해 메르스 사태 이후다. 홍콩에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한국인 여성 2명이 격리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김치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여성 혐오글이 등장했고 이에 반발한 여성들이 연대, '메갈리아'(메르스+이갈리아 딸들)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일베의 여성혐오 현상을 그대로 남성에게 적용한 '미러링' 전략으로 일베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김치녀'에는 '한남충(한국남자+벌레)'으로, '3일에 한번 한국여자는 패야 한다'는 말은 '3일에 한번 한국남자를 패야 한다'는 식이다.
이들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인증을 하는 일베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적은 포스트잇을 공용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 등에 붙이는 퍼포먼스도 해왔다. 최근 강남역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을 훼손하는 일베 회원들의 비상식적 행위도 이런 갈등관계에서 벌어진 행동이다.
◇"난 아니야" 하다가도…공감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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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다수 사람은 양측의 극단적인 행동에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특정사건이 발생한 상황에선 '집단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집단극화란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이 정보를 공유하면 할수록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는 현상이다. 온라인에서 특정사건을 조장하는 글에 오래 노출되고 답변을 다는 과정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교수는 "여성과 남성 간의 혐오는 일종의 파시즘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며 "이는 문제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해결하기보다 단순히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것일 뿐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순 없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범인이 약자를 대상으로 벌인 살인이 아닌 여성혐오로 조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사회구조나 개인적 사연으로 인한 정신질환자가 벌인 범죄행위인 만큼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구조를 개선할 방법을 찾는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