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미래다2- 초등학교 시간표를 바꾸자②-1] 쉬는 시간 늘린 학교 가보니

바닥면적 400㎡(120평) 정도 되는 체육관 안에서 50명가량의 초등학생들이 깔깔대며 피구공을 던지고 논다. 공은 아이들 사이를 오가거나 농구 골대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자유롭다. 금방 너덜너덜해지는 피구 공은 한 달이면 새 공으로 바꿔야 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신나게 논다는 얘기다.
서울 연천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오전 10시30분부터 50분까지 꿀맛 같은 '놀이시간'이 주어진다. 지난달 22일 놀이시간에 찾은 연천초 체육관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한 여자아이가 앞에 와 "사진 찍어요?"라고 물으며 손으로 'V'(브이) 자를 만든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중간놀이 시간을 만족해했다. 3학년 이서연양은 "중간놀이 시간 때문에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놀이시간엔 모래만 있어도 영화 한편…학년 상관없이 '놀이 친구'
중간놀이를 비교적 일찍 시작한 서울 유현초등학교의 놀이시간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2교시 후 30분간 놀이시간을 운영한 지 올해로 6년째다.
체육관은 물론 그늘진 곳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인원 과다로 안전사고를 우려해 주 운동장은 요일별로 사용 학년을 정했지만 학교 곳곳에 있는 공터에서 노는 건 학년 구분이 없다. 언니, 오빠, 누나, 형, 동생들이 서로 어울려 노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학교 운동장에는 정글짐 같은 기구 위에 아이들이 가득했고 그 아래 모래바닥에도 아이들이 모여 앉았다. 2, 3학년 남학생들은 모래를 파서 바다를 만들고 나름의 각본을 짜면서 서로 역할을 맡는다. 상상력으로 자기들만의 영화 한 편을 찍고 있는 셈이다.
성장에 '놀이'가 빠졌다는 비판이 일면서 2010년을 이후 전국적으로 이 같은 놀이시간이 학교 안에 서서히 생겨났다. 연천초와 유현초는 학부모 설문조사 등을 거쳐 실시한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전체 601개 서울 초등학교 중 479개교(2017년 1학기 기준)가 중간놀이 시간을 운영한다. 2교시 후 쉬는 시간을 늘린 방식이다. 시간별로는 15분 운영학교가 8개교, 20~25분이 409개교, 나머지는 30분 이상이다.
서울 외에도 경기, 대전, 제주 등 교육청별로 일부 지역에서는 10분 쉬는 시간을 30분까지 늘린 유형이 많다. 대전의 경우 하루 50분 이상 놀이시간 프로그램에 전체 146개 학교가 참여하기도 한다.
독자들의 PICK!

◇ "뛰어놀면 정신없다? 더 차분한 수업시간"
중간놀이시간이 점차 확대된 힘은 교사, 학부모, 무엇보다 학생들의 긍정적 반응에서 비롯한다. 홍은택군(유현초5)은 올해 초 놀이시간 30분인 학교로 전학 오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3학년 때까지는 10분 쉬는 시간이 전부였고 전학 오기 직전에서야 20분 쉬는 시간을 처음 보내봤다.
홍군은 "주로 교실에서만 짧게 보드게임하고 놀다가 이제는 축구하면서 뛰어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지난 1학기에는 학교 안에 안 쓰는 공간을 찾아서 어떻게 놀면 좋을지 생각하고 직접 놀이시설을 설계하는 '잘 노는 우리 학교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했다. 20여명 학생들이 함께 만든 놀이시설은 2학기부터 운동장에 세워져 사용 중이다.
30분 중간놀이시간을 운영하는 서울 은빛초등학교에 다니는 김민찬군(2학년)은 "(쉬는 시간이 길어서) 상상력 게임을 오래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이면 블록으로 칼을 만들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며 친구들과 어울린다.
교사들은 쉬는 시간 외에 긴 놀이시간이 생기면서 겪은 큰 변화로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논다는 점을 들었다. 또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간다는 점도 주목했다. 놀이에 힘을 쏟고 나면 수업 시간에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설명이다.
한봄양(유현초4)은 "술래잡기를 주로 하면서 논다"며 "실컷 뛰고 나면 수업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 문제 해결력↑ 협력도↑ 놀이시간의 마법
교사들은 중간놀이시간을 운영한 후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 스트레스 감소 효과가 가장 눈에 띈다고 입을 모았다. 연천초 1학년 담임인 한 교사는 "1학년들은 자유로운 유치원에 다니다 경직된 학교에 들어오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큰데 중간놀이 시간이 그 부담을 많이 줄여준다"고 말했다.
어떤 5학년 담임교사는 "3년 전 중간놀이 시간이 없는 다른 학교에 있었는데 애들이 소화기를 뿌리고 문을 부수는 등 난폭했다"며 "이 학교 아이들은 차분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놀이시간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소위 '문제아'가 없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친구와 어울리면서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관계 형성, 문제 해결 능력 자체가 향상된다는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도 학생에 대한 편견이 없어져 교사와 학생 간 관계 역시 성장한다.
서울북부교육지원청 소속 학교에서 일하는 한 3년 차 교사는 "유별나게 고집 피우던 아이들이 놀이시간이 진행되면서 많이 달라졌다"며 "놀이시간 초반에는 많이 싸워도 갈수록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게 되더라"고 말했다.
전체 학급 분위기도 덩달아 변했다. 이 교사는 "수업 모둠(조별) 활동을 할때도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역할을 정해 과제를 한다"며 "아이들 간에 사이가 좋아지면서 교실 내 괴롭힘도 줄었다"고 말했다.
긍정적 효과를 내는 데 관건은 놀이시간을 얼마나 자율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렸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현희승 유현초 교사(교육과정부장)는 학생들에게 다양하게 놀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정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활용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놀이를 정하고 놀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현희승 교사는 "전학생이나 저학년 학생들은 놀이 경험이 적어서 처음에는 어색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적응한다"며 "놀이 종류, 규칙을 알아서 정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