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지옥(地獄)-①]야간 노동, 생체 리듬 망가뜨려 면역력 약화하는 '2A급 발암물질'… 홀로 진상 고객 대응하며 위험에도 노출


사람 몸에는 생체 시계(biological clocks)가 있다. 밤에는 잠들게 도와주고, 아침에는 잠에서 깨게 해주는 시계다. 뇌의 솔방울샘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이 같은 시계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 덕에 사람은 밤에 체온이 떨어지고, 호흡수와 맥박이 떨어지며, 에너지 소비 수준이 감소한다.
이 멜라토닌 호르몬은 빛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침에 밝은 태양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가 감소했다가 밤에 주위환경 어두워지면 분비가 증가한다. 즉 사람은 밤에 자고 낮에 활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부류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 있다. 바로 야간 아르바이트(알바)다.
야간 알바를 오래도록 한 이들은 하나같이 몸이 나빠졌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는 인간의 몸이 야간 알바와 맞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주취 고객 등 진상 고객들을 상대하며 고된 감정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2A급 발암물질 '야간 노동'… "몸 아파졌다"
야간 노동은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정한 2A급 발암물질이다. 납 화합물·디젤엔진 배출물·말라리아 등이 함께 2A급 발암물질로 분류됐다. 국제암연구소는 야간 노동이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 같이 지정했다. 정확히 어떤 경로로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지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야간 노동이 밤 동안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면역기능이 함께 억제됨으로써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야간근무를 '생식 건강 유해인자'로 분류했다. 생식 건강 유해인자란 생식독성이 있는 화학물질과 야간근무·서서 일하는 업무환경 같은 작업환경으로, 불임·유산·선천성 장애아 출산 등 사람의 생식기능이나 태아의 발생 발육에 영향을 주는 물질을 뜻한다. 고용노동부는 총 44종의 물질을 생식 건강 유해인자 물질로 보고 관리하고 있다.
야간 노동은 이외에도 생체리듬을 변화시키고 식사시간 불규칙을 불러와 만성적 소화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야간노동자는 주간 노동에 비해서 심장질환 발생률이 높다.
미국 국립직업안전보건연구소(NIOSH)는 이 같은 야간 노동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정 야간노동을 피하고 △야간 노동이 부득이한 경우 교대근무를 하며 △야간 노동은 주 2~4일 이내로 최소화 한다 △8시간 이상의 장시간 야간노동은 가급적 피하거나 최소화한다 등의 방법을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야간 알바 공고 중 많은 수는 고용주의 편의에 따라 8시간 이상의 주 5일 장시간 노동자를 구인 중이다. 예컨대 △서울의 한 편의점은 시급 7530원에 주 5일 오후 9시~아침 7시(일 10시간) 야간 노동자를 △서울의 한 코인 노래연습장은 시급 7530원에 주 5일 오후 8시~새벽 5시(일 9시간)야간 노동자를 △서울의 한 PC방은 시급 7530원에 주 5일 밤 11시~아침 9시 (일 10시간) 야간 노동자를 구하고 있었다.
PC방에서 야간 주 5일 알바를 했던 대학생 조모씨(24)는 "평소에도 밤을 자주 새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야간 알바를 지원해서 일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그런데 한 두달 일해보니 집에서 놀면서 밤 새는 것과 밖에서 일하며 밤 새는 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점차 머리가 멍해지고 소화도 잘 안돼서 세 달쯤 일했을 때 그만 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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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주취 손님 대응… 사건·사고도
하지만 야간알바생들은 몸만 힘든 게 아니라고 토로한다. 야간에는 주취 손님이 증가해 진상 고객을 대응하는 일이 더 잦아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손님이 적어 혼자 근무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입을 모았다.
알바노조 편의점모임이 지난해 전·현직 편의점 노동자 4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손님에게 폭언·폭행을 경험한 알바생은 전체의 54.5%였는데, 야간 근무자가 이 같은 경험을 한 비율이 더 높았다. 야간 근무자는 62.6%, 주간 근무자는 49.8%가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행 경험률'로만 범위를 좁히면 야간 근무자는 12.2%, 주간 근무자는 6.0%이었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원생 A씨(27·여)는 "동네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일했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손님들이 들어와서 말을 거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이들은 대부분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면서 "그 후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는데, 갑자기 돌변할까 무서워 끊임없이 그들의 말을 받아줘야 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야간 알바 그 자체도 힘들었지만, 그 보다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이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A씨와 같은 일을 겪은 야간 알바생이 많다보니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에도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야간 편의점 알바생은 "늦은 새벽 술에 취한 채 들어와 와인 진열장을 부수고 지갑이 없다며 난동을 부린 손님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시해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야간 알바 중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2016년 12월 경북 경산에 위치한 한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 중이던 알바생은(당시 35세)이 봉투 값을 놓고 시비 끝에 한 취객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됐다. 2011년 12월에는 밤 11시25분쯤 인천 연수구 연수동 한 PC방에서 게임머니를 충전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모씨(47세)가 흉기로 알바생 박모씨(당시 27세)의 가슴을 찔러 숨지게 했다.

이 같은 상황이지만 상당수의 야간 알바생들은 홀로 근무하며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 7월 23일부터 8월 2일까지 야간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전국회원 3628명을 대상으로 '야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0.8%가 야간 아르바이트 중 '홀로 근무' 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야간 알바생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 교육 △셉티드(범죄예방을 위한 인테리어) 구축 △심야 근무 시 2인 이상 배치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알바노조 관계자는 "PC방이나 편의점 점장이 알바생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야간 영업점의 긴급 신고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정웅 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야간 알바는 △손님 등 제 3자를 대응하는 업종(PC방·편의점·카페 등) △대응하지 않는 업종(야간 택배 물류 등)으로 나뉜다"면서 "제 3자를 대응하는 업종에서 야간 알바는 손님들이 감정적·물리적으로 폭력적 행위를 할 때 피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알바생의 안전을 위해 계산대 뒤로 황급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야한다"며 소방법에서 비상구 마련이 의무이듯 야간 알바생의 안전을 위한 '셉티드' 도입이 의무화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만일 제3자를 대응하지 않고, 또 혼자 일하는 알바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책임자가 없으면 불의의 사고가 날 수 있다"면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야간에도 관리감독자가 함께 일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