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군' 구하라의 죽음, 우린 왜 막지 못했을까

'고위험군' 구하라의 죽음, 우린 왜 막지 못했을까

김지성 기자
2019.11.27 05:00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섣부른 응원 비수 될수도"…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 사회적 합의, 법적 근거 필요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향년 25세)와 고(故) 구하라(향년 28세) /사진=길건 인스타그램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향년 25세)와 고(故) 구하라(향년 28세) /사진=길건 인스타그램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향년 25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팬들은 고(故) 구하라(향년 28세)를 떠올렸다. 지난 5월 한차례 극단적 시도를 한 구하라가 절친의 죽음 앞에 혹여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까 걱정했다.

구하라는 그런 팬들을 안심시켰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라이브 방송에 나와 "나는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리야, 언니가 네 목까지 열심히 살게"라는 말에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40여일 후 구하라는 설리 곁으로 떠났다. 그 사이 그녀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자살과 자기결정권, 쉽지 않은 국가의 개입

일반인 눈에 비춰도 위태로워 보였던 그녀. 전문가들은 구하라를 자살 고위험군이라 봤다.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순 없었는지,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26일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이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두 배 정도 높고,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지인, 즉 '자살 생존자'도 시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면에서 구하라는 고위험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 보건복지부가 2007년에서 2011년까지 응급실에 내원한 8848명 자살 시도자에 대해 의무기록을 조사한 결과,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사망할 확률은 일반인이 사망할 확률의 25배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는 심리적 부검을 통해 14가지 자살 위험요인이 규명되었는데, 이 중 첫번째로 꼽힌 것이 '자해 2회 이상 또는 자살 시도 1회 이상' 요인이다. 구하라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살 고위험군이라 해도 이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선진국 중엔 기독교 문화가 많아 '생명은 신이 줬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며 "때문에 자살 시도를 정상 상태가 아니라고 보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생명존중 교육을 하거나 심리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위기를 관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치료 안 받겠다는 국민을 국가가 억지로 치료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자살을 '자기결정권'이라고 했을 때 국가가 개입할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자살 고위험군을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가, 한다면 어떤 법적 근거에 기반할 것인가 등에 대해 정리가 필요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섣부른 응원, 비수 될 수도

그렇다면 이들을 위해 주변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주변의 따뜻한 관심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종익 교수는 "남편과 사별한 사람이 있었는데, 주위에서 이 사람이 걱정돼 옆을 지켰다"며 "여기에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해 상황이 개선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한국 사회같이 가부장적이고 여성에 대한 폭력적 통념이 강한 사회에서 피해 입은 여성들은 자신을 탓하곤 한다"며 "때문에 상담을 할 때 '당신 탓이 아니다', '가해자의 잘못이다' 등 임파워링(힘돋우기)을 주요 메시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섣부른 조언은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박 교수는 "옆에서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것만큼 중요한 건 쓸 데 없는 말을 안 하는 것"이라며 "가령 '너 이러고 있어도 되냐', '얼른 털고 일어나라' 등 평범한 응원의 말도 자살 고위험군에겐 비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정신건강 이해력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돈 못 벌면 쓸모가 없다'거나 '자살 생각하는 사람은 막아봐야 소용 없다'는 등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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