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이곳에는 간간이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고 적막이 맴돌았다. 다닥다닥 붙은 집 귀퉁이엔 연탄들이 놓여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골목길엔 연탄재가 까맣게 쌓여 있었다. 비를 막기 위해 덮은 비닐과 추위를 막기 위해 덧댄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는 가재도구가 버려져 있었다. 마을 꼭대기에 올라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개포동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인 구룡마을에는 겨울이면 주민들을 만나기 어렵다. 주로 고령층들이 거주해 거동이 힘들기 때문이다. 기온이 낮으면 뼈가 쑤시고 몸이 움츠러들 뿐 아니라 눈이라도 오면 길이 비탈져 다치기 십상이다.
23일 오전 취재진이 만난 개포동 구룡마을의 주민들은 코로나19(COVID-19)로 더욱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과거 3000세대가 넘게 살았던 마을은 최근 정부의 재개발 정책으로 700세대까지 줄었다. 남은 주민 대부분은 70대 이상 노인들인데 주민들 대부분이 연탄 살 돈도, 옮길 힘도 부족한 상황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연탄봉사 단체들이 와서 주민들의 겨울을 도왔지만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며 봉사 발길마저 끊겼다. 마을 주민 김원심씨(73)는 "2019년에는 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에서 가구당 연탄 400장을 전달해줬는데 지난해에는 200장만 들어왔다"며 "연탄 봉사단체 말고도 따로 들어오던 연탄이나 후원품이 코로나로 뚝 끊겼다"고 설명했다.
진씨는 "겨울을 나려면 1000장은 있어야 하는데 부족하다"며 "그냥 마을 회관 옆에 가져다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어 진씨는 "지난해를 경험한 주민들이 연탄에 더 목을 매고 있어 마을 인심이 흉흉하다"며 "연탄 후원이 오면 한 장이라도 더 가져가려는 다툼이 벌어진다"고 상황을 전했다.

연탄도 문제지만 개인위생 관리도 쉽지 않다. 상수도 파이프 대부분이 밖으로 드러나 겨울철 동파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진씨는 "동네의 99%가 화장실이 밖에 있다 보니 주민들이 화장실 가는 걸 제일 불편해한다"며 "추운데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겨울철에 기본으로 물이 얼다 보니 며칠씩 물을 사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수도공사(상수도사업본부) 사람들 말 들어보면 마을에서 실제 사용한 양보다 누수량이 더 많다더라"라며 "겨울철이면 집 밖 화장실도 잘 쓰지 않고 온수를 아끼려고 잘 씻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개인위생과 방역이 중요한 시기에 자칫 잘못하면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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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교류가 현저히 적다 보니 그동안 감염이 발생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김씨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경우는 직장을 다니는 주민 1~2명이 외부에서 걸려온 정도"라며 "외부에서 구룡마을로 들어올 일도 없다 보니 확진 사례도 없다"고 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주민들은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주민들 상당수가 코로나 이전 파출부나 식당 종업원, 일용직 근로자로 일을 했었다. 지난해 코로나로 일자리 감소가 컸던 직종들이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계층의 무직 가구 비중은 지난해보다 4% 포인트 늘어나 60%를 넘었다. 일용직 가구 비중은 9.1%에서 5.8%로 떨어졌다.
구룡마을에 30년 넘게 살고 있다는 A씨(80)는 "코로나 전에도 내 나이대 사람은 일할 곳을 찾기 어려웠지만 근근히 일자리가 있었다"면서도 "지난해부터는 일자리가 아예 없다. 올해는 또 어찌 될지 앞이 캄캄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마을 주민 정모씨(56)는 작년에 연탄 500장을 따로 샀다. 정씨는 "코로나 전에는 라면 같은 식자재도 가끔 받았는데, 작년부터는 하나도 들어오는게 없다"며 "생활비 충당도 어려운데 일도 없다"고 토로했다.
주민 김모씨(60)도 지난해 일자리를 잃었다. 김씨는 "구룡마을은 강남이랑 가까워서 일자리가 많았고 때로는 골라가기도 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모두 집에만 머물고 있다"며 말했다.
진씨는 "코로나19로 지난해 두 배는 더 추웠다"며 "올겨울은 얼마나 추울지 상상도 하기 싫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