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하)-고독사,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지금도 밤에 잠을 못 자요."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만난 87세 최영자씨(가명)는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23일 2층 단칸방에서 고독사한 세입자 박명진씨(52·가명)를 발견한 최초 목격자다. 최씨는 하루 전에도 박씨가 한동안 인기척이 없는 게 이상해 2층에 올라 갔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틈새로 보니 박씨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최씨는 박씨가 자는 줄 알았다.
최씨는 다음날 아침 밥과 김치를 들고 박씨를 찾아갔다. 문 밖에 서서 긴 우산의 끄트머리로 박씨의 몸을 콕콕 두드렸다. 하지만 박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최씨는 불길한 예감에 집으로 내려와 119를 불렀다. 소방에 따르면 박씨는 이미 2주 전에 사망한 상태였다.
지난해 12월에도 현저동에서 60대 남성 기초생활수급자가 고독사한 지 3일만에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가족이 경기도에 살고 해당 남성은 지병 때문에 혼자 살아서 발견이 늦었다. 당시 한 주민이 남성의 집에 형광등이 밤낮 안 가리고 켜진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고 한다.
이렇게 홀로 살다가 숨져서 발견이 늦는 고독사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가 늘어나는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고 경제적 불안까지 더해져 고독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보고있다. 하지만 정부는 '고독사 통계' 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다. 고독사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당연히 대응 마련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15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고독사로 추정 가능한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9년 2656명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3136명, 지난해 3488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추정치에 불과하다. 현행법상 고독사는 '혼자 살다가 숨져서 발견이 늦는 사망'을 말한다. 홀로 죽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발견돼도 결국 가족 등 보호자가 있다면 무연고 사망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현저동에서 숨진 60대 남성은 고독사했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고독사 규모를 파악할 때 무연고 사망자 수를 참고하는 것은 현재 정부가 작성하는 정확한 '고독사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입회자 없는 사망' 통계자료를 구축한 것과는 비교된다.
통계청이 '지켜본 사람이 없는 사망자' '원인 불상의 죽음' 통계를 작성하지만 여기에는 형사 사건에 따른 '변사'가 포함돼 정확한 고독사 통계라 볼 수 없다.
정확한 현상파악이 안되고 있으니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 연구'에서 "각 통계가 설명하는 현상과 고독사는 차이가 있다"며 "고독사 실태를 분석하기 위해 구체적인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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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가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는 1인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가구 중 1인가구 비중은 2017년 28.6%(561만가구)에서 2018년 29.3%(584만가구), 2019년 30.2%(614만가구), 2020년 31.7%(664만가구)로 매년 상승했다.
1인가구는 신고할 동거인이 없으니 급성질환에 의한 사망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 현저동에서 숨진 박씨도 부검 결과 '뇌경색에 의한 사망' 진단이 내려졌다고 알려졌다. 잦은 음주의 영향이었다. 동거인이 없으니 집주인이 방문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사망 사실을 몰랐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이 심화한 점도 고독사를 늘리고 있다. 지난달 사망한 박씨도 2층 단칸방에 이사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동네에 친한 지인을 만들 수 없었다. 집주인이 박씨와 교류하는 유일한 이웃이어서 집주인 외엔 그의 고독사를 알아차릴 사람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현저동에서 숨진 60대 남성도 동네 지인이 일부 있었지만, 이들 모두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도 남성이 확진자일까 걱정돼 방에 들어가길 꺼렸다고 한다. 사망 후 뒤늦게 발견된 이유다.

지자체에서는 고독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각종 사회 안전망을 가동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초 '1인가구 안심종합계획'을 발표하고 4대 안심정책을 마련했다. 정책 중에는 인공지능(AI)이 1인가구에 주기적으로 전화해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생활관리서비스' 사업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지원을 거부하면 지자체가 나설 방법은 없다. 최근 박씨의 현저동 고독사도 그랬다. 서대문구는 요양관리사와 사례관리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거나, 1인가구 휴대폰에 일정 기간 통화 송발신 내역이 없으면 구청에 알림이 가는 '고독사 예방 모니터링' 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에 현저동 통장은 수 차례 박씨를 찾아가 '전입신고하고 복지 지원을 신청하라'고 권했지만 박씨가 '필요 없다'며 거부했다. 4일 오전 박씨의 단칸방 앞에는 읽지 않은 듯 구청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안내문이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구청 관계자는 "1인가구가 복지 지원을 거부하면 구청으로선 손발이 묶인 셈"이라며 "복지 서비스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인 고독사 예방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 문제에 관심 갖고 관련 법을 마련해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다"면서도 "복지 지원을 거부하더라도 '정부가 곁에 있고 챙겨줄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 지원을 거부한 1인가구는 별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 한 사례관리 사업을 하던 중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복지사들의 지속적인 방문에 결국 복지지원을 받은 50대 남성 사례를 거론했다.
노 교수는 "해당 남성은 후천적 시각장애를 겪으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거부했지만, 복지사가 매일 같은 시간 방문하니 결국 어느 날엔 집에 들여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며 "정부가 그들을 존중하고 관심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서 결국엔 그들 삶을 실질적으로 돕는 게 복지의 본질이다. 복지 지원을 거부해도 꾸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