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00만원 빨리" 딸 납치 전화에 혼비백산…노모 막은 우체국 직원

[단독]"1000만원 빨리" 딸 납치 전화에 혼비백산…노모 막은 우체국 직원

정세진 기자, 박수현 기자
2022.04.15 11:47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할머니, 어디서 전화를 받고 이 돈 찾아가시는 건 아니시죠?"

"아니에요. 아들 결혼식에 쓸 돈이에요 빨리 주세요."

지난 4일 낮 12시쯤. 80대 여성 A씨가 서울 노원 공릉우체국을 찾아와 급하게 현금 1000만원을 인출해달라고 말했다. 우체국 직원이 여러 차례 '어디서 전화를 받은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계좌이체나 수표 한장으로 받아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도 현금을 고집했다.

우체국 직원이 마지못해 현금 1000만원을 내주려는 순간 A씨는 직원에게 번호표를 건넸다. 번호표 뒷면에는 '조용히 천천히 따라 오세요' 라고 쓰여 있었다. 쪽지를 받은 직원은 즉시 인근 화랑지구대에 신고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노원경찰서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공릉우체국 주무관 이모씨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이씨의 빠른 판단으로 A씨는 1000만원의 피해를 예방해서다. 이씨는 인출한 현금을 들고 우체국을 뛰어 나가려는 A씨를 동료직원, 청원경찰, 주변에 있는 시민들과 함께 말렸다.

보이스피싱범의 거짓말에 속은 A씨는 인근 화랑지구대 소속 조백행 경감(53), 이민정 순경(23)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딸이 납치됐다고 믿고 있었다. A씨는 불안해하며 숨을 헐떡였고 경찰관이 묻는 말에 대답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경찰관을 향해 연신 손짓으로 '저리 가라'는 뜻을 전할 뿐이었다. A씨의 손가방 안에 보이스피싱범과 통화중인 휴대폰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순경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며 A씨를 진정시켰다. 종이에 '딸은 납치 당하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써서 보여주며 설득한 끝에 A씨 휴대폰을 건네 받았다. 통화중인 휴대폰에서 A씨 딸의 연락처를 찾은 이 순경은 곧 현장에서 사용하는 경찰용 휴대폰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 도착한 후에도 말 한마디 없던 A씨는 딸의 목소리를 듣자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A씨는 이날 오전 집에서 딸이 '도와달라' 외치며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신원미상의 남성은 "딸이 5000만원을 빌렸는데 돈을 갚지 않아 5500만원이 됐다"며 '빨리 갚지 않으면 딸이 다친다"며 A씨의 휴대폰 번호를 요구했다. 또 A씨의 계좌가 있는 우체국을 찾아 돈을 인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 순경이 A씨를 설득하는 사이 함께 출동한 조 경감은 화랑지구대와 노원서에 연락해 사복 경찰관을 요청했다. 혹시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거책을 검거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복 경찰관 3명이 현장에 출동해 잠복했지만 이날 수거책은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구대까지 동행해 A씨를 딸에게 인계하고 상황을 종료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우체국 직원에게는 감사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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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정세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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