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향년 63세로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뒤산에서 등산을 하다가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이날 오전 5시 21분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에서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했다.
이후 5시 47분쯤 경호원 이모씨를 불러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6시1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했고 6시 14분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 법사(선재규 원장)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지시한다.
이씨는 정토원에 갔다가 6시17분에 돌아왔는데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경호동에 있던 경호관 신모씨에게 연락해 수색에 나섰고 6시45분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두부 손상과 늑골과 골반 등 전신에 다발성 골절을 입어 부산양산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9시30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 대통령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500만명의 국민이 전국 301개 분향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봉하마을에만 100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몰렸다. 분향 행렬이 너무 길어 100명이 한꺼번에 분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유서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며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사망한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화장을 했고 유언에 따라 고향 봉하마을 사저 근처 묘역에 안장됐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을 결정하기까지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사업 운영상 특혜를 받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여야 국회의원에게 뇌물성 금품을 제공했다는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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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 딸 정연씨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2009년 4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했다. 이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이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노 대통령이 서거했고, 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