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10월7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최고 부촌(富村)으로 꼽히는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단지 경비원 이모씨(53)가 주차장에 있던 차 안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
이씨는 입주민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한 달간 치료 끝에 결국 숨을 거뒀다. 이씨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용역업체 직원 이씨는 2014년 7월 이 아파트 단지 경비로 부임했다. 그는 평소 70대 입주민 A씨로부터 심각한 괴롭힘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는데, A씨는 분리수거를 못 한다고 이씨를 질타하고 삿대질했으며 이씨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왜 자리를 비우냐"고 따졌다.
A씨는 또 이씨를 불러 세워놓고 '경비! 경비! 이거 먹어'라며 음식물을 던져주기도 했다.
이씨는 부임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회사에 병가를 신청하는 한편 근무지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회사 측은 "병가는 무급이고 힘들면 권고사직을 한 뒤 연말에 자리가 생기면 받아주겠다"며 오히려 사직을 권했다.
결국 그해 10월 사고가 터졌다. A씨는 아침부터 이씨에게 30분간 질책과 욕설을 했고, 모욕감을 견디다 못한 이씨는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입주민은 차량에 불이 난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 동시에 다른 경비원이 소화기로 이씨 몸에 붙은 불을 껐지만, 이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일반노조 등 12개 시민단체는 용역 경비원의 처우 개선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강남지청에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공단은 "이씨가 업무 중 입주민과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의 우울증이 악화하고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떨어져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씨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동료 경비원은 "폭언을 일삼던 A씨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다. 이 씨가 항의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예, 예'하며 받아주다 보니 짓밟은 거다.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한 친구는 추모사에서 "(이씨가) 강남 땅에는 악마가 산다고 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독자들의 PICK!

아파트 측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은 없었다.
민주노총은 "입주자대표회의(입대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입대회 측은 "한 주민의 개인적인 문제이지, 입대회와는 관계가 없어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심지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용역경비업체와 계약 기간을 더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아파트와 경비업체 간 계약이 15년 이상 이어져 왔던 터라, 아파트 측이 이씨의 분신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것에 대해 보복성 해고를 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12월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 아파트 입주민은 경비원 50대 이모씨를 상가 근처로 불러 '왜 쳐다보느냐'고 따진 뒤, 이씨가 '쳐다본 적 없다'고 하자 마구잡이로 폭행해 코뼈를 부러뜨렸다.
연이은 사고로 아파트 이미지가 실추되자, 아파트 측은 경비원들의 고용승계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경비원들이 "일부 입주민의 문제를 대다수 선량한 입주민의 문제로 언론에 비치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에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들의 정년을 당시 60세에서 1년 연장하고 고용을 승계해주기로 했다. 합의에 따라 경비원들이 당초 계획했던 파업도 없던 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