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났는데 "술값 내" 문 닫아 고등학생 가둔 사장…57명 숨졌다[뉴스속오늘]

불났는데 "술값 내" 문 닫아 고등학생 가둔 사장…57명 숨졌다[뉴스속오늘]

마아라 기자
2025.10.30 06:00

1999년 인현동 화재 참사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당시 현장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당시 현장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1999년 10월 30일. 고등학교 가을 축제를 마친 학생들이 뒤풀이를 위해 인천시 중구 인현동의 한 호프집으로 몰려들었다. 해당 건물의 지하 1층 노래방과 2층 호프집을 무허가 영업 중이던 업주(당시 33세)는 청소년들에게 주민등록증 확인 없이 술을 판매했다.

호프집에는 120여명의 고등학생이 몰렸다. 50여평(165㎥) 규모의 공간에는 겨우 한 사람만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간격으로 테이블이 빽빽하게 붙어있었다.

지하 1층에서 붙은 불 번져…탈출 막은 술집 사장 "돈 내고 가"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당시 현장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당시 현장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저녁 6시55분쯤, 4층 상가 건물의 지하 1층 노래방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밀폐된 공간에 차 있던 유증기에 불이 붙었다. 노래방 내부 도색 공사를 한 작업자들이 페인트와 시너 통을 카운터 앞에 남겨 놓은 게 화근이 됐다.

노래방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업주가 돈을 아끼기 위해 방염처리가 되지 않은 우레탄 폼을 사용하는 바람에 불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1층 고깃집에 있던 사람들은 불이 난 것을 알아챈 뒤 바로 대비했다. 3층 당구장에 있던 이들은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 탈출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당시 피해자들이 구조되는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당시 피해자들이 구조되는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다만 2층의 상황은 달랐다. 술을 마시던 중 불이 난 것을 뒤늦게 알아챈 학생들이 대피하려 하자 사장은 "돈 내고 나가라"며 출입구 철문 안쪽에 설치된 유리문을 닫아 버렸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불길이 치솟았고 화염과 유독가스가 하나뿐이던 출입구를 가득 메웠다.

2층 호프집은 겉에서 보면 창문이 있었지만, 내부에는 석고보드로 모두 막혀있는 구조였다. 술집 내부가 연기로 가득 차자 사장은 주방 환풍기를 뜯어내고 홀로 탈출했다. 학생들은 연기로 가득찬데다 전기까지 나가 어두운 실내를 헤맬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학생들은 초록색 비상구 불빛으로 향했다. 그러나 비상구 불빛은 가짜였다. 소방 점검을 위한 눈속임용이었던 것. 비상구를 열자 화장실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결국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다.

경찰·공무원 유착이 부른 참사…실형받은 이 없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호프집 업주는 노래방 외에도 PC방 등 가게 8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업소 8곳 모두 무허가 업소였다. 특히 호프집은 1999년 3월 안전기준 미달로 적발돼 인천 중구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사건 이후 업주와 관내 경찰, 담당 공무원 사이에 유착이 있었음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업주와 관리 사장 이모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돼 각각 징역 5년,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검찰은 경찰 11명, 시·구청 공무원 7명 등 19명을 모두 재판에 넘겼으나, 실형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재 사건 26주기, 아직도 눈물 흘리는 유가족

2020년 10월29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가온갤러리에서 인현동 화재참사 21주기 추모전 ‘기억의 싹’ 전시가 열린 가운데, 한 시민이 추모비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2020년 10월29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가온갤러리에서 인현동 화재참사 21주기 추모전 ‘기억의 싹’ 전시가 열린 가운데, 한 시민이 추모비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참사 이후 인천시교육청은 청소년들의 여가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을 건립했다. 2005년에는 회관 앞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석과 위령비를 세웠다.

사건이 벌어진 지 26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유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사건 당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했던 18세 이양은 사망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음에도 '종업원'이었다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양 부모는 지난 8월7일 오전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백한 차별"이라며 관련 조례 개정을 촉구했다.

유가족은 "일일 알바로 갔을 뿐인 아이다. 그 아이를 가해자로 몰아 보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보상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인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돼버렸기에 아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중구 관계자는 "해당 조례는 사실상 이미 폐지된 상태"라며 "현재 진행 중인 행정소송이 있어 조례를 폐지하지 않고 남겨뒀을 뿐, 개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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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라 기자

머니투데이 마아라 기자입니다. 연예·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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