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17세기 영국 국왕 찰스1세를 언급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이란 점을 인정했다. 앞서 내란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지난달 13일 윤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었다.
지 부장판사는 '최고 권력자의 내란 혐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찰스 1세를 언급했다. 최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헌정 질서를 침해하면 반역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측면이었다. 최고 권력자의 내란 혐의란 측면에서 이번 판결이 377년 전 진행 된 찰스 1세의 재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 부장판사는 "찰스 1세는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게 된다"며 "판결을 살펴보면 왕이 국가에 대해 반역했단 사실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때부터 왕에 대한 범죄라는 생각이 바뀌어 의회를 공격하는 건, 왕이라 해도 주권을 침해하게 돼 반역죄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고 덧붙였다.

1625년 즉위한 찰스 1세는 아버지 제임스 1세와 마찬가지로 '왕권신수설'의 신봉자였다.
그는 왕권은 신성불가침이며 의회는 이를 뒷받침하는 존재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의회의 동의 없는 과세(선박세 등)를 강행하고 국교회(성공회) 의식을 강요하며 청교도와 의회를 탄압했다. 이런 독단적인 통치는 결국 의회파와 무력 충돌인 '잉글랜드 내전(청교도 혁명)'을 불러왔다. 여기서 패배한 찰스 1세는 재판정에 서게 됐다.
1649년 법정에 선 찰스 1세는 "누구의 권한으로 왕인 나를 재판하느냐"며 재판 자체를 거부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왕은 법 위에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국민의 이름으로' 찰스1세를 재판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통치자 권력은 신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란 근대 민주주의 원칙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찰스 1세는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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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1세 죽음은 단순한 왕의 처형을 넘어 국가와 군주를 동일시하던 전근대적 관념을 깨뜨린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왕이라도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면 '반역자가 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오늘날 헌법 정신의 뿌리를 만든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