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3일 만에 꺼낸 세월호…'실종' 5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뉴스속오늘]

1073일 만에 꺼낸 세월호…'실종' 5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뉴스속오늘]

김소영 기자
2026.03.23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7년 3월30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의 목포신항 이송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2017년 3월30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의 목포신항 이송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9년 전인 2017년 3월23일, 전남 진도 앞바다 깊숙이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침몰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지고 찌그러진 선체는 표면 곳곳 짙은 녹이 슬어 갈색빛을 띠고 있었고 사고 당시만 해도 선명했던 'SEWOL'(세월)이라는 영문 표시도 험한 물살에 바랜 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험 인양이 시작되고 만 하루도 안 돼 본인양에 성공하면서 왜 이렇게 인양 작업이 늦어졌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정부는 맹골수도 거친 기상과 인양 작업에 따른 기술적 문제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정부와 인양업체 간 불협화음과 미흡한 준비가 인양 지연 주된 이유라는 비판이 나왔다.

잔존유 제거·리프팅빔 설치…'첩첩산중' 인양 작업

세월호 수색은 참사 발생 210일 만인 2014년 11월11일 실종자 가족들 요청으로 종료됐다. 이후 정부는 세월호를 뭍으로 끌어내는 걸 검토하기 시작했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4월 "세월호를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통째로 끌어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한 뒤 선체 인양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해 8월 해수부는 세월호 인양업체로 중국 교통운수부 산하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최종 선정하며 1년 안에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작업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완료 예정 시점 역시 2016년 7월에서 8월로, 다시 2016년 연내에서 2017년 2분기로 계속 늦춰졌다.

인양이 미뤄진 이유는 정부의 부실한 사전 조사와 판단 착오 때문이다. 상하이샐비지 측은 인양 첫 단계이자 필수 단계인 잔존유(배 안에 남아 있는 기름) 회수 작업을 하는 데 있어 해수부 자료보다 실제 세월호 내 잔존유가 많아 제거 작업이 한 달 가까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잔존유 회수 작업과 병행한 세월호 창문과 출입문에 유실방지망을 설치하는 작업 역시 예상했던 시간의 3배가 훌쩍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맹골수도의 빠른 유속 탓에 앞서 설치한 유실방지망 고정 16㎜ 볼트가 느슨해지면서 용접 방식으로 재시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침몰 해역인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2017년 3월24일 인양된 세월호를 반잠수선박으로 옮기기 위해 예인선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침몰 해역인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2017년 3월24일 인양된 세월호를 반잠수선박으로 옮기기 위해 예인선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017년 3월30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의 목포신항 이송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2017년 3월30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의 목포신항 이송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선수(뱃머리) 들기 작업에도 애를 먹었다. 상하이샐비지 측은 애초 세월호 선수를 들어 올릴 때 세월호 내부 18개 탱크에 공기를 주입해 부력을 만들면 선체 무게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실제론 준비한 부력재가 부족해 10개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추가로 설치하는 데 33일이 걸렸다. 이후 선수 들기 작업은 여러 차례 실패와 연기를 거듭한 끝에 50여일 만에 성공했다.

세월호 인양 작업의 핵심은 '리프팅빔' 설치였다. 리프팅빔은 배를 떠받쳐 들어 올릴 철제 인양 받침대다. 1만t이 넘는 세월호를 리프팅빔 없이 선체에 구멍을 뚫거나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들어 올릴 경우 균형을 잡기 어렵고, 선체 추가 손상이 우려돼 리프팅빔 작업은 필수적이었다.

리프팅빔 설치 작업은 선체 아래 퇴적층을 굴착한 뒤 잠수부들이 케이블을 하나하나 손으로 연결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세월호 선미(배꼬리) 주변 뻘층이 불규칙하고 단단했던 데다 애초 10개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리프팅빔을 33개 설치하게 되면서 완료 시점이 5개월가량 늦어졌다.

지지부진했던 세월호 인양 작업은 공교롭게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인용된 후 갑자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해수부는 같은 달 22일 세월호 선체를 해저면에서 1m 띄우는 시험 인양에 성공하자 곧바로 본인양에 들어갔다.

수색 재개 후 4명 시신 수습했지만…5명은 영구 실종
지난해 4월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식이 열린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4월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식이 열린 모습. /사진=뉴시스

마침내 세월호는 2017년 3월25일 오후 9시15분 완전 부양되며 선체를 전부 드러냈다. 그런데 기상 상황이 악화해 엿새 만에야 겨우 목포신항으로 향할 수 있었고 그해 4월11일 육상에 최종 거치하며 인양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됐다.

배 내부와 침몰해역 수색이 본격화하면서 단원고 고창석 교사(사고 당시 40세), 단원고 2학년생이었던 조은화·허다윤양, 이영숙씨(당시 55세) 유해가 수습됐다.

2018년 5월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는 직립 작업도 이뤄졌다. 그러나 단원고 2학년생이던 박영인·남현철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당시 59세), 부자지간인 권재근씨(당시 51세)와 권혁규군(당시 7세) 등 5명의 흔적은 끝내 찾지 못한 채 그해 10월19일 세월호 마지막 수색이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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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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