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압수한 카드 명세서를 돌려받기 위해 압수수색영장 원본 등을 가져가 반환을 거부한 80대 노인에게 절도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절도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김씨는 2025년 1월 경찰이 배우자의 주택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자택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던 중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카드 명세서 30장을 압수하자 항의했다. 김씨는 해당 명세서가 압수 대상이 아니라며 가져가 주지 않았고 이를 회수하려는 경찰관의 가슴을 밀쳤다.
경찰이 명세서를 되찾자 김씨는 테이블 위에 있던 압수수색영장 원본 2부와 압수목록 교부서 등 관련 서류를 가져가 명세서를 돌려주면 서류도 반환하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소파에 앉았다. 김씨는 반환을 요구하는 경찰관의 손등을 때리고 철수하려는 다른 경찰관의 뒤통수에 소금 뭉치를 던지기도 했다. 김씨는 이후에도 서류를 반환하지 않다가 같은 해 2월 수사관의 질문을 받고서야 서류를 제출했다.
1심은 김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압수수색영장 등을 장시간 점유하고 경찰관들의 반환 요구를 거부한 만큼 절도죄의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고 봤다. 2심도 김씨가 약 한 달 뒤에야 서류를 제출한 점 등을 들어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서류를 장시간 점유했다는 사정만으로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물건을 가져가거나 반환하지 않은 사실뿐 아니라 해당 물건을 자기 소유물처럼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하거나 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었음이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김씨가 명세서를 돌려주면 서류를 반환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점, 압수수색영장 원본은 개인이 본래 용도에 따라 이용하거나 처분하기 어렵다는 점, 압수목록 교부서 역시 압수된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작성·교부되는 서류라는 점도 고려했다. 김씨가 서류를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하거나 처분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다만 공무집행방해 부분에 대해 유죄로 본 것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절도 부분과 나머지 유죄 부분이 경합범(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죄를 저질렀으나 그 죄들에 대해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이 선고된 만큼 원심 판결 전부를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