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3일 "5개 구장에서 총 10만5441명이 입장하며 시즌 총 관중 수 500만 명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누적 관중은 504만1891명. 275경기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지난해 294경기 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했던 것보다 무려 19경기 빠르다.
2026 KBO리그는 이미 100만, 200만, 300만, 400만 관중 돌파 과정에서도 모두 역대 최소 경기 기록을 새로 썼다. 역대 최다 관중인 1231만2519명을 기록한 지난해보다도 빠른 페이스다. 2024년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12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올해는 1300만 관중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흥행 열기다.
이 같은 흥행은 자연스럽게 구단들의 수익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2025년 10개 구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10개 구단 총매출은 7795억8000만원으로 2024년보다 14% 증가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올해도 관중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26년 구단 총매출은 8000억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KBO리그는 머지않아 '매출 1조원 산업'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과거 야구단은 모기업 입장에서 '돈 먹는 하마'에 가까웠다. 구단들은 매년 재정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경영 계획을 보고했지만 모기업 의존도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 수입은 제자리걸음인데 선수단 운영비와 시설 투자 비용은 계속 늘어났다. 결국 부족한 돈은 모기업이 메워야 했다.
예를 들어 구단이 수백억 원을 들여 2군 연습구장을 지으면 더 이상 해외 마무리 훈련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모기업을 설득한다. 그런데 막상 연습구장이 완공되면 이번에는 해외에서 훈련해야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논리가 나온다. 모기업 입장에서는 야구단을 '양치기 소년'처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종식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억눌렸던 야외 활동 욕구가 분출되면서 프로야구 인기가 급상승했고, 이는 곧 구단 수익 구조의 변화로 이어졌다. 입장 수입, 상품 판매, 광고·스폰서십, 각종 부대사업 수익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구단의 재정 자립도는 높아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모기업 지원금 비중도 줄어드는 흐름이다.
이제 프로야구는 엄연한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관중 증가와 매출 확대를 통해 산업화에는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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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성장이 관중 증가와 팬 소비 확대에 의해 이뤄졌다면 앞으로의 성장은 리그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가능성에서 나와야 한다. 기업으로 치면 외형 성장 단계를 넘어 경쟁력 고도화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KBO 구단들도 이제 투자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늘어난 수익은 선수단 연봉 상승과 FA 영입, 육성 인프라 개선 등에 상당 부분 사용됐다. 특히 시장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FA 선수들의 몸값도 과거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물론 선수단 전력 강화는 구단의 최우선 과제다. 팬들이 가장 원하는 것도 결국 승리다. 야구단 최고의 상품은 당연히 선수와 경기력이다. 따라서 좋은 선수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은 구단 경영의 핵심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산업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인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한 투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성과를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과 인적자원개발(HRD)에 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야구단의 R&D는 선수 육성 시스템과 데이터 분석, 스포츠 과학, 스카우팅 네트워크 구축 등 미래 전력을 만드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팬 경험 향상, 디지털 콘텐츠 개발, 마케팅 고도화, 신규 수익 모델 발굴 등 비즈니스 경쟁력을 높이는 활동도 포함된다.
HRD는 선수뿐 아니라 코치와 프런트, 데이터 분석가, 마케팅 인력 등 조직 전체의 역량을 키우는 투자다. 결국 지금의 흥행 수익을 미래 경쟁력으로 바꾸는 일은 선수와 조직, 그리고 비즈니스 역량에 얼마나 꾸준히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매년 수조 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미래의 경쟁력이 연구개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연구개발비는 줄일수록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지속적으로 성장한 기업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발표한 「2024년 국내 연구개발 투자 상위 1000대 기업 투자 결과」에 따르면 국내 R&D 투자 상위 1000대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액은 83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R&D Intensity)은 4.8%로 집계됐다. 삼성전자 같은 기술 선도 기업들은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인적자원개발(HRD)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들은 교육과 훈련, 리더십 개발, 직무 재교육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선도 기업들은 매출의 1% 안팎에서 많게는 2~3% 수준까지 인재 육성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 경쟁력을 만들기 위한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을 미래 경쟁력의 원천으로 보고 꾸준히 투자하는 것과 비교하면 프로야구는 여전히 선수 중심의 투자 비중이 높다. 산업 규모가 커진 만큼 이제는 시스템과 사람에 대한 투자도 함께 늘려갈 필요가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수십 명 규모의 분석 조직을 운영하고 선수 육성 시스템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수를 사는 것보다 선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KBO 구단들도 지난 10여 년 동안 선수 육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시스템 구축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해왔다. 2군 시설을 개선하고 데이터 분석 부서를 신설했으며 트래킹 장비와 스포츠 과학 장비를 도입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분명한 발전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투자의 초점이 여전히 선수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FA 선수 영입에는 많은 비용을 쓰면서도 정작 그 선수를 뒷받침할 조직 역량 강화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최근 프로야구 구단들의 수익 구조를 보면 입장 수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굿즈 사업과 콘텐츠 사업, 스폰서십과 브랜드 협업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앞으로는 팬들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경험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좋은 선수는 물론이고 좋은 프런트와 좋은 조직이 있어야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오래전부터 HRD를 중요한 투자 항목으로 인식해 왔다.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데이터 인력을 확보하며 스포츠 비즈니스 전문가를 육성한다. 조직 전체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 중요성을 직접 경험했다. 2004년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에서 7개월 동안 프런트 연수를 받으면서 야구 행정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다. 선수 육성과 스카우팅 시스템은 물론 마케팅과 팬 서비스, 구단 운영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경험은 2007년 SK 와이번스가 프로야구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던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를 추진하는 밑거름이 됐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경쟁력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지금 KBO 구단 프런트에도 이런 경험과 교육의 기회가 절실하다. 선수 육성 시스템이 장기 투자의 결과물인 것처럼 프런트 경쟁력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투자와 교육이 있어야 한다.
대기업들이 미래 경쟁력을 위해 매출의 4~5%를 R&D에, 1% 안팎을 HRD에 투자하듯 프로야구단도 일정 수준의 투자 기준을 고민할 시점이다. 물론 제조업이나 IT기업과 야구단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로야구 역시 연간 매출 8000억원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경영 지표는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투자가 적절할까.
현재 KBO 10개 구단의 연간 매출 규모가 8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운영예산의 4~5%를 R&D에 투자할 경우 연간 320억~4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재원이 만들어진다. 구단별로는 32억~4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1% 정도만 HRD에 투자해도 구단당 평균 8억원 안팎의 인재 육성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데이터 분석 조직 확대와 스포츠 과학 인프라 구축, 국제 스카우팅 네트워크 강화는 물론 프런트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스포츠 비즈니스 전문인력 양성까지 추진할 수 있는 규모다.
강한 구단은 좋은 선수를 많이 보유한 구단이 아니다. 좋은 시스템을 가진 구단이다. 그리고 좋은 시스템은 꾸준한 연구개발과 사람에 대한 투자에서 나온다.
최근 KBO가 누리는 천만 관중 시대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큰 기회다. 그러나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현재의 흥행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야구단들이 지금의 성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성장세는 멈출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수익이 늘어났을 때 미래 경쟁력에 투자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오늘의 흥행을 내일의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단만이 지속적인 성공을 누릴 수 있다.
1000만 관중 시대를 만든 것은 팬들이다. 지금의 호황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구단의 몫이다. 잘 나가고 있을 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