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달아난 신부` 하이닉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간의 협상 종결 소식을 전하는 해외 언론의 기조는 차갑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측의 아마추어적인 협상 전술에 지친 나머지 재협상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홧김에 협상 테이블에서 뛰쳐나가버렸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직도 한국이 97년 외환위기 당시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통박하면서 노조와 소액주주, 일부 한국 언론의 반대와 저항을 문제삼았다.
그나마 이 정도의 비판은 점잖은 편이다. 마이크론 본사가 있는 미 아이다호주의 현지 언론은 하이닉스를 '줄행랑친 신부'에 비유하면서 "마이크론이 간을 떼주었는데도 하이닉스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아냥거렸다. 포브스는 '자살행위를 저지른 하이닉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안으로 굽는 팔 같은 평판에 기죽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남겨진 현실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추가 대출 절대 불가를 거듭 확인하며 하이닉스 매각 방침을 굽히지 않지만 해외 언론들은 한국이 그동안 보였던 행태와 앞으로의 선거일정을 감안하면 시장원칙이나 법대로의 처리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다.
채권단의 결정을 하룻만에 뒤엎어버리는 '쿠데타'를 감행한 하이닉스 이사회는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을 자신했다. 마이크론의 철수로 이제 싫든 좋든 하이닉스는 다른 대안을 찾아나서야 한다. 노조 관계자들도 뼈를 깎는 마음으로 회사를 살려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애사심이나 정체불명의 애국심만으로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은 정부나 민간이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로 막무가내의 떼를 곧잘 쓰며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나라로 종종 비쳐지는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이 잘못된 선입견임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