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금융사고의 경제학

[광화문] 금융사고의 경제학

강호병 이코노미스트
2002.08.29 12:44

[광화문] 금융사고의 경제학

어제 신용카드 하나를 교체발급 받았다. 보통 발급되는 신용카드는 아르바이트 아주머니가 와서 통지서에 주민등록번호와 사인을 받고 전달해주는데 어제는 좀 다른 것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사인까지 다 했는데 왜 그러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본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려 그런다"라고 말했다. 왠지 찜찜했지만 `사고를 막으려고 그러는구나'라고 그 갸륵한(?) 취지가 이해돼서 선뜻 주민등록증을 건네줬다. 그 아주머니는 주민등록증을 슬쩍 한번보고 다시 나에게 건네준 뒤 이런 말을 하고 사라졌다. "사진을 자세히 잘 보라고 했는데.." 이해는 되면서도 마음한구석에 `불편하군'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현대증권 영업점 직원 47억원 횡령, 우리은행 모 지점직원의 18억원 횡령, 모 새마을금고 직원의 24억원 횡령, 최근 대우증권 법인계좌도용사건....요즘 금융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금융사고들을 보면 몇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금융회사 내부인이 단독으로 혹은 외부인과 짜고 전산시스템을 교묘하게 조작해 범죄를 저지르는 지능형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에는 금융범죄가 돈이 궁한 기업에게 부당대출을 해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대가성 범죄가 주류를 이뤘지만 지금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금융행위가 사이버화된데 힘입어 금융범죄도 빼돌리기형 IT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둘째 범죄 단위당 금액이 매우 크다. 터졌다 하면 몇십억원이 기본이다. 금융감독원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99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1055건, 8311억원이다. 건당 평균규모가 무려 8억원이다. 아마 이것은 사회적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고 빈부격차가 커진 것과 관계가 있지 않나한다. 평생 조직에 충성하는 대신 고용을 평생보장해주던 내직장 개념이 없어지면 일부 윤리가 덜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크게 한 건하고 튀자'는 범죄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융구조조정을 해오면서도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자산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치중한 나머지 어쩌면 돈을 다루는 금융업의 기본이라 할 방범시스템의 확립은 소홀히 취급돼 온 것이 사실이다. 현대증권이나 모 새마을금고 횡령사건의 경우처럼 몇년씩에 걸쳐 범죄가 이뤄져도 적발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보안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이번의 사건들은 금융사고 예방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안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것은 효율성과 상충된다. 아이디와 패스워드 한번만 치면 거래가 곧바로 되던 것도 인증서받고 이런저런 패스워드 몇 개치고, 잠깐 자리비우면 이내 로그아웃돼고... 바로 고객의 불편함인 것이다. 불편함은 곧 금융거래에 대한 고객의 수요를 줄인다.

보안은 무작정 시스템과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돈을 들이기 앞서 돈을 다루는 사람들의 정신무장부터 제대로 시키고 볼일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