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쟁본색
개전 보름도 안된 이라크 전쟁이 전장의 포화만큼이나 밥그릇 싸움으로 시끄럽다. 전쟁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판에 미국은 전후에나 가능할 주요 이권들을 자국 기업들에게 미리 떠넘기기 바쁘다.
최근 미 국제개발처(USAID)가 발주한 9억달러(1조1300억원)의 전후 복구 프로젝트는 모두 미국 기업들에게 돌아갔다. 현재로서는 최소 300억달러(37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나머지 복구사업들도 마찬가지가 될 공산이 크다.
전쟁을 극구 반대했던 프랑스를 비롯, 잿밥에 관심이 있는 나라들은 입도 못떼고 속앓이만 하는 눈치다. 심지어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미국과 한배를 탔던 영국조차 볼멘 소리다.
참다 못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29일 이번 전쟁으로 관계가 틀어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양국 정상은 전화 회담을 통해 전후 이라크 처리문제는 유엔이 주도 해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봤다고 한다.
때늦었지만 유엔으로 복귀하려는 영국의 시도는 일견 바람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황을 아는 이들에게 영-프의 어슬픈 화해나 유엔 운운은, '이라크인의 자유'를 들먹이면서 눈하나 깜짝않고 당사자들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는 미국의 잔혹한 살육만큼이나 후안무치하다. 이는 전후 이라크를 독식하려는 미국에 제동을 걸려는 새로운 편짜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등 목숨을 걸고 국가적, 종교적 자존을 지키겠다는 비장감이 하늘을 찌르는데 다른 한쪽에선 아직 등록도 안된 전리품을 챙기느라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승부가 너무 빤해서일까. 그보다는 세계 2위, 1100억배럴 이상의 석유를 깔고 앉은 먹이감이 구색 갖춰가며 점잖 빼고 기다리기엔 너무 유혹적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출발부터 반인륜적 침략전쟁이란 오명을 단 이번 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본색(本色)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