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치사한 유럽, 난처한 인민폐

[시평]치사한 유럽, 난처한 인민폐

송의영 서강대 교수
2003.09.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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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치사한 유럽, 난처한 인민폐

은유적인 화법이었긴 하지만 G7 국가들이 엔과 위안의 절상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를 넘는 미국으로서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환율정책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하는 점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미국이 달러를 하락시키려는 방법이 묘하다. 이자율을 내리거나 달러를 매각하는 경제적인 방법이 아니라 유럽을 꼬드겨서 중국과 일본에 구두압력을 넣는 외교적 편법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시(Bush)다운 발상이다.

미국사람들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로 치부해 버린다 하더라도 유럽이 가담하는 품세가 야릇하다. 이 공동선언문은 몇 가지 유사성 때문에 1985년 플라자 협정과 같은 달러하락 협정으로 가는 준비단계로 인식될 수 있다. 당시에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를 들락거리고 있었고, 유럽이 미국을 도와 달러 폭락을 유도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유럽과 일본은 기운이 팔팔해서 자국화폐의 절상으로 인한 수출 감소를 견뎌낼 여력이 있었지만, 기력이 쇠한 유럽과 초죽음 상태에 있는 일본은 현재 급격한 절상을 받아낼 만한 체력이 없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높았던 당시에는 평가절상이 수입물가를 낮춰주는 호재였지만, 각국이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현 시점에서 평가절상은 물가에도 악재다.

따라서 플라자의 위력을 갖는 협정의 도출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번에 미국 편에 서게 된 유럽은 다른 꿍꿍이속이 있어 보인다.

유로는 작년 2월의 저점 이래 이미 달러에 대해 30% 이상 절상했지만, 원과 엔은 10여% 정도 밖에 절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의 위안은 당연히 하나도 절상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은 이미 버스 값을 지불했지만 아시아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미국에 팽배해 있다. 미국이 이러한 인식을 유럽에 전달하면서 너희는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테니 아시아에 같이 압력을 넣자고 유혹한 결과가 이번 공동선언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즉 유럽이 미국의 아시아 두드리기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문은 절상을 막기 위해 달러를 은밀히 사들이고 있었던 한국과 일본의 손을 주춤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더욱 곤혹스럽다. 미국 재무성과 이번 G7 선언문은 유연한 환율, 시장의 힘에 연동되어 있는 환율을 촉구하고 나섰다. 즉 동일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외환시장 개입의 폭을 줄이는 그런 일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바꾸라는 주문을 중국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환율제도의 선택은 전적으로 국가의 주권에 속한 문제다. 또한 중국의 경상수지가 그리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는 엄청난 흑자를 올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흑자는 GDP의 1-2% 밖에 안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화폐가 폭락했을 때도 절하 유혹을 견뎌내고 환율을 고정시킨 공로도 상기해야 한다.

또 중국의 환율은 달러에만 고정되어 있을 뿐 유로에 대해서도 엔에 대해서도 계속 출렁이고 있다. 수많은 화폐 중에서 가장 큰 수출시장의 화폐에 자국의 화폐가치를 고정시켰을 뿐이다. 변동환율이 고정환율보다 우수하다는 합의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환율을 고정시키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보다 더 큰 무역확대효과를 가져온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공동선언문의 가장 큰 희극적 요소는 프랑스, 독일과 이태리가 이번 선언문에 사인을 했다는 점이다. 무역의 팽창을 위해 주요 무역파트너의 화폐에 자국의 화폐가치를 완전히 고정시키고 있는 유로 국가들이 환율의 유연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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