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골드만삭스의 치밀함
진로가 온갖 우여곡절끝에 법정관리 신청 1년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지난 1년은 진로가 국민주로 불리는 소주의 국내 1위 업체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익을 내는 알짜배기 업체라는 점, 골드만 삭스라는 외국 금융자본과 대한전선이라는 국내 토종자본간의 세 대결이라는 점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골드만삭스가 진로에서 보여준 행동은 선진 금융자본이 얼마나 치밀한 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국내 금융권에겐 그로부터 배워야할 점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내 보여줬다.
골드만삭스의 치밀함을 한번 보자. 골드만삭스는 1998년 당시 화의중이던 진로의 경영컨설팅을 위해 들어왔다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진로의 채권을 헐값에 인수했다. 컨설팅을 하면서 회생 가능성을 확신하게 됐고 헐 값에 매입했다. 당시 원 채권자였던 은행들은 BIS비율 맞추기에 급급하느라 부실 자산으로 분류되면 묻지마로 털 때였다. 3000억원의 가량의 진로 채권을 400억원대에 인수했다는 게 회사안팍의 추정이다. 정리계획안에서 원금의 대부분을 변제토록 했으니 이것만으로도 벌써 5-6배 이상의 이익을 남긴 셈이다. 여기다 인수이후 10%에 육박하는 이자도 꼬박 꼬박 챙긴 상태다.
골드만삭스의 치밀함은 그들이 제출했던 정리 계획안에서 한 번 더 빛을 발한다. 그들의 당초 안(案)에는 채무면제 조항이 전혀 없었다. 법정관리 기업에겐 조속한 갱생을 위해 원금도 상당폭 채무면제를 해주는 게 대부분이다. 하나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받겠다는 것이었다. 진로의 현금흐름이 매우 좋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진로측의 이의 제기로 최종 확정안에는 개시전 이자에 대해 상당폭 채무면제를 시키는 조항이 들어가기는 했다.
골드만삭스는 정리계획안 발표에서도 선진금융기법을 동원, 국내 채권자들을 압도하는 논리로 주목을 받았다. 일단 법원에 제출한 정리계획안의 두께부터가 달랐다. 대한전선이나 코아에셋 등 국내 채권자들보다 2-3배정도는 분량이 많았다. 양만 많은 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돋보였다.
진로의 현금흐름(Cashflow)를 예측하고 타 안(案)의 대한 단점을 지적하는 등 치밀한 준비끝에 내놓은 것으로 타 채권자에게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안을 포함한 모든 정리계획안의 변제조건에 대한 분석을 통해 10년간의 법정관리 기간에 발생할 년도별 현금흐름을 현가로 할인하는 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정말 대단했다. 현금흐름 분석은 복잡한 금융기법이 사용되지만 기업가치 평가에는 가장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자본시장이 외국에 개방된 지 이제 10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 외국자본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한국 토종자본에서도 골드만삭스 뺨치는 전문가집단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